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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스타 루카쿠의 연대와 저항
▲ 축구평론가 정윤수

유럽 축구장의 응원가들은 과연 저게 응원한답시고 부르는 노래 맞는가 하고 의아한 경우가 많다. 자기 팀 선수들 잘하라고 응원하는 노랜데, 약간의 욕설과 문화적인 편견이 끼어든다. 물론 모든 언어 행위가 그렇듯이 그런 단어들은 맥락 속에서, 또 응원을 한다는 정념 속에서 큰 문제 없이 불릴 수도 있고 해당 선수도 크게 신경 쓰지 않기도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박지성을 응원하기 위해 열렬히 부른 <개고기 송>이 대표적이다. 가사는 이러하다.

“박지성, 박지성, 넌 어디든 있을 수 있지/ 넌 네 나라에서 개를 먹어/ 그러나 더 나쁘게 될 수도 있어/ 넌 리버풀 선수가 될 수도 있지/ 그러면 정부의 임대주택에서 쥐를 먹게 될 거야.”

박지성을 응원하는 노래인데 다 듣고 보면 영원한 라이벌 리버풀을 ‘디스’하는 가사다. 여기서 우리에게 자극적인 것은 개고기를 먹는다는 가사다. 개고기 식용에 대한 논란은 잠시 논외로 하자.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는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정도는 심한 경우도 아니다. 자기 팀 선수임에도 조롱과 야유가 섞여 있는 수도 있고, 다른 팀 선수라면 더욱이 공격적인 비난 일색의 가사를 함부로 부르는 곳이 유럽의 경기장이다. 대개의 선수들은 웃고 넘기거나 무시하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할 때 몇몇 선수들은 응원가를 핑계 삼아 공세를 일삼는 무리들에게 저항해 왔다.

벨기에 출신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로멜루 루카쿠가 바로 그런 선수다. 유소년 때부터 특출 난 기량을 선보여 각종 프로팀과 대표팀에서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루카쿠는 10대 후반에 벨기에리그를 평정한 후 잉글랜드로 넘어와 첼시와 에버턴을 거쳐 맨유에서 활약하고 있다. 맨유팬들이 반갑게 환영하면서 응원가를 만들었는데, 그 가사 안에 인종차별적인 신체 묘사가 담겨 있었다. 축구계 안팎의 인종차별 문화를 반대하는 민간단체 ‘킥잇아웃(KickItOut)’은 이 응원가를 금지해 달라고 구단에 요청했고, 구단은 이를 받아들였다. 짓궂은 애정 정도를 넘어섰던 것이다.

사실 루카쿠는 장외에서 인종차별에 저항한 선수였다. 2018년 1월 세계적인 의류업체 H&M은 자사 홈페이지에 흑인 어린이 모델을 게시한 적 있다. 문제는 이 흑인 어린이가 입은 옷에 적혀 있는 문구였다. ‘정글에서 가장 멋진 원숭이’라고 말이다. 즉각 세계적인 비난이 쇄도했다. H&M은 사과하고 해당 사진을 삭제했다. 그런데 사과를 했다고? 어디에? 누구에게? 그 회사는 그 소년에게도 사과를 했는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루카쿠는 우선 그 소년을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문제의 이미지를 게재했다. 대신 옷에 적혀 있던 문구를 ‘검은 색은 아름답다’로 바꿨고,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는 곧 왕이 될 왕자야. 그 누구도 네가 다르다고 말하게 하지 마."

2015년 3월 이 지면을 통해 지네딘 지단의 위대한 저항 이야기를 쓴 적 있다. 지단은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알제리계 이민자였다. 극심한 가난과 인종차별을 딛고 그는 불멸의 스타가 됐다. 그러나 그는 성공신화의 어릿광대를 거절했다. 자기처럼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던 동네 친구들은 여전히 마르세유에서 힘들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단이,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이 등장해 프랑스를 인종차별의 광기로 몰아갈 때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것은 당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일이다. 지단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둔 그해 봄에 “프랑스 가치에 위배되는 정당”이라며 장 마리 르펜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고, 다행히 그 선거에서 르펜은 한때 당선이 유력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으나 결국 자크 시라크에게 완패했다.

그런 이야기를 썼는데 안타깝게도 지단의 투쟁은 2017년에도 계속됐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재직하던 지네딘 지단이 아버지 장 마리 르펜에 이어 다시 극우파 신드롬을 일으킨 마린 르펜의 당선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렇듯 유럽의 정치와 스포츠, 그러니까 의사당과 축구장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광기가 가시지 않고 있다. 나치를 추종하는 문구와 문양이 새겨진 응원도구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2017년 9월1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독일 대 체코의 러시아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독일은 2대 1로 승리했다. 그러나 관중석을 향한 인사를 생략했다. 요하임 뢰브 감독이 멀리까지 응원 온 자국민들에게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선수들에게 명했기 때문이다. 일부 팬들은 나치 구호와 인종차별 구호를 외쳤다. 뢰브 감독은 저들은 진정한 팬이 아니라 인종주의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수치스럽고 지겹고 부끄럽다. 저들의 경기장 입장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월드컵을 앞둔 2018년 3월 국제축구연맹(FIFA)은 러시아 축구팬들을 상대로 인종차별 행위 여부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A매치 경기 도중 발생한 러시아 관중들의 인종차별 행동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미드필더 폴 포그바가 골을 넣자 일부 러시아 팬들이 흑인을 비난하는 야유를 보낸 것으로 의심받았다. FIFA 규정 3조는 인종·성별·언어·종교·정치 등의 차별을 금지함은 물론 이런 행위가 발생할 경우 제재와 제명 등을 가할 수 있다. 이런 취지에 따라 러시아월드컵 기간 중 인종차별 행위가 적발되면 심판은 '경기 중단-정지-취소' 과정을 거쳐 몰수패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다시 루카쿠 얘기를 해 보자. 조별리그 첫 경기 파나마 전에서 두 골을 몰아넣은 후 BBC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벨기에언론은 내가 좋은 경기를 하면 ‘벨기에의 공격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진한 날 벨기에 언론에서 나는 ‘콩고의 피가 흐르는 선수’로 바뀌어 있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조금 부드럽게 대답할 수 있느냐고 묻자 루카쿠는 “나를 키운 건 분노”라고 단호히 말했다.

극도의 가난과 인종차별 속에서 루카쿠는 공을 찼다. 온수도 안 나오고 쥐가 돌아다니는 집에서 컸다. 열두 살 때 이미 높은 기량을 선보인 루카쿠는 유소년리그에서 34경기 76골을 넣은 것을 외할아버지에게 자랑했다. 외할아버지는 울먹이면서 “내 딸은 잘 있니? 잘 지켜 줄 수 있지?”라고 말했고, 닷새 후 세상을 떠났다. 루카쿠는 열여섯 살 때 프로에 데뷔했고, 그 이후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루카쿠가 됐다.

그는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외할아버지와 한 번만 더 통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딸은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제 집에 쥐도 없고, 바닥에서 주무시지도 않아요. 이제 더는 사람들이 내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들은 내가 누군지 잘 알거든요’라고 말이다.”

그가 H&M의 모델이었던 소년에게 격려의 말을 남긴 것은 단순한 자선과 관심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가난과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있음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진심 어린 격려와 연대를 보낸 것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정윤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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