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 칼럼니스트 겸 작가

커피는 아주 오래전(AD 500년께) 격무에 시달리던 에티오피아의 한 양치기 소년에 의해서 발견됐다. 피로한 양치기 소년이 전에 없이 활발해진 양과 그 양이 뜯어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빨간 열매의 신기한 효과에 주목한 것에서 커피는 시작됐다. 그 후 교회에서 커피를 ‘악마의 열매’로 규정하는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커피는 프랑스 파리에 입성한 1669년 이후부터 줄곧 유럽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심지어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진 것은 커피 없이 몽롱한 상태에서 싸웠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시민혁명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파리 지식인들이 커피를 어떻게 우려내야 가장 좋은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옥신각신했다니 놀랍다.

그런데 이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심지어 카페가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조차 거름망에 신선한 커피 원두를 넣고 물을 붓는 방식, 그러니까 프랑스 식으로 얘기하면 ‘뒤벨루아 방식(Dubelloy)’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다. 심지어 편의점에서 파는 원두커피조차 그 맛이 그런대로 훌륭해 굳이 비싼 돈 주고 커피전문점에 가서 커피 사 먹을 일이 점점 줄고 있다.

덕분에 문 닫는 커피전문점과 카페가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가뜩이나 과잉공급과 ‘악마’ 같은 임대료 때문에 살아남기 힘든 업종이었다. 폐업 비율로 따지면 치킨집이나 분식점, 동네 빵집보다 생존율이 낮은 업종이 바로 카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잘되는 곳이 있다. 잘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잘돼서 인근에 교통 체증을 불러일으키고 30분씩 줄을 서서 주문을 해야 곳이 있다니, 궁금해서 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은 강릉의 최고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는 테라로사 1호점. 사장이 외국 연수까지 보내 교육시키고 고무시킨 전문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려 주는 곳이니 커피 값이 확실히 남다르게 맛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커피 맛을 감별하는 우리들의 혀가 그렇게 섬세하지 못하니 ‘것 같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하지만 그곳은 커피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커피 매장이 웅장한 느낌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다는 느낌을 줬다. 그것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이국적인 도시에 있는 유서 깊은 공장 같은 걸 개조한 미술관…. 실제로 전시장도 있고, 엽서나 고품질 원두를 파는 아트숍 같은 곳도 있었다.

인종차별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스타벅스를 대신해 전국적인 규모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테라로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네마다 숨은 보석처럼 생존하는 소규모 카페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커피 그 이상의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파주의 심학산 돌맞이길에 위치한 '커피집 & 목공소 헤몽 페네'도 그런 곳이다. 같은 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부부가 직접 그린 헤몽 페네의 그림이 프로방스 스타일의 건물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이곳은 소규모 갤러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아내가 각별히 사랑한 프랑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헤몽 페네 같은 일러스트 작품을 적극 소개하는 것은 물론 지역의 핸드메이드 작가들에게 활짝 열려 있는 ‘작가의 방’ 코너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종종 작은 규모의 전시회와 아트 상품 프리마켓도 심심치 않게 여는데 얼마 전에는 폐업한 예식장 의자들을 작가들에게 보내고 그들에 의해 재탄생한 의자가 다시 카페 뒷마당 프리마켓에 나오는 재미난 일을 벌였다.

생각해 보면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에펠탑보다 더 위안이 되는 건 카페였다. 파리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물론 그들이 사랑한 문학과 예술과 철학의 정신이 깃든 문화공간으로서의 카페. 그 때문에 기꺼이 비싼 커피 값을 지불하고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 이제 스타벅스의 시대가 가고 매우 프랑스적인 진정한 카페 문화가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나는 느끼고 있다.

칼럼니스트 겸 작가 (@kimkyung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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