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무엇이 달라지는지, 어떤 가능성이 펼쳐질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데 여념이 없다. 노동계도 다르지 않다. 남북 노동자 교류와 협력을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을 모른다. 북한 노동자는 더 모른다. 보수정권 10년간 공백 상태였다. 한국노동연구원 홈페이지를 보면 ‘북한’을 키워드로 한 연구자료는 10건이다. 주제는 △북한이탈주민(5건) △북한 노동법제·노동정책(2건) △북한인력 활용방안(2건) △북한 시장·기업과 노동인센티브(1건)다. 그나마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주로 발간된 것들이다. 10~20년이 지난 지금 유의미하게 활용하기 어려운 자료다.

최근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노동연구원 일부 연구자들이 올해 초 ‘통일포럼’을 만들어 북한의 노동·경제·사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통일포럼은 그동안 네 차례에 걸쳐 북한문제 학자들을 초빙해 북한 경제와 복지, 무역을 주제로 다뤘다. 북한의 노동문제도 엿볼 수 있다.

보수정권 10년간 북한 노동연구 ‘공백’
장마당 상징 시장경제 질서 들어선 북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등장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전 북한 최고지도자와는 사뭇 달랐다. 솔직하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핵을 완성했다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렸겠지만 한편에서는 이른바 장마당(종합시장)을 중심으로 시장경제 질서가 들어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2012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북한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한국은행의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를 보면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직후인 1990~1998년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1999~2005년 7년 연속 플러스 성장을 달성했다가 2006~2010년 5년간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2012년 1.3%, 2013년 1.1%, 2014년 1.0%, 2015년 -1.1%, 2016년 3.9% 성장했다. 2016년에 기록한 3.9%는 1999년(6.1%) 이후 최대 증가율이다.<그래프 참조>

통일포럼에 초빙된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경제의 어제와 오늘,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발제자료를 통해 “한국은행 추정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김정은 시대 경제성장을 ‘아주 미약한 저성장’이거나 ‘정체 상태’로 평가할 것”이라며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시장화가 크게 진전됐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1~2%포인트 높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상대적 호전’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돈주 운영 '사회주의 모자 쓴' 시장기업 등장

김정은 시대의 경제정책은 ‘우리식경제관리방법’과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통한 경제개혁 확대로 요약된다.<표 참조>


예컨대 △기업이 의무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계획지표수 대폭 감소 △상당수 기업에 대한 지령형 계획화 폐지 △중앙정부 거시경제적 차원 전략 수립·실행 △기업 자율성·인센티브 대폭 확대·자기책임성 증가가 눈에 띈다.

양문수 교수는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을 중국과 비교한 연구 결과를 보면 북한은 농업과 국유기업 개혁뿐 아니라 사기업·사경제라는 경제주체·범주에 큰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며 “북한의 신흥부유층인 이른바 돈주(錢主)가 운영하며 사회주의 모자를 쓴 시장기업으로 활동하는 기업형태는 중국에도 존재했고 개혁·개방 초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 시대 중기적 경제운영 핵심축인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은 종전 5개년 계획과는 성격이 판이하다”며 “1990년대 초 경제난이 발생한 뒤 26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계획경제가 사실상 와해되고 시장화가 크게 확산된 경제 현실상 엄청난 변화를 사후적으로 추인·수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경제 이끄는 쌍두마차 '북중무역'과 '시장화'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경제를 끌고 가는 쌍두마차는 북중무역과 시장화"라고 입을 모은다. 양 교수에 따르면 90년 북한의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였으나 2005년에는 50%를 넘어섰다. 2008년 73.0%에 이어 2016년에는 92.5%에 이른다.

지난해부터는 대북제재로 무역규모가 감소하고 있다. 최장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통일국제협력팀장이 통일포럼에서 발표한 ‘2018 북중무역 변화와 시사점’ 발제자료에 따르면 수출 대북제재 때문에 지난해 대중무역 총액은 49억8천만달러로 전년(58억3천만달러)보다 14.6% 감소했다. 수입은 늘어났다. 대중수입은 33억3천만달러로 전년(31억9천만달러)과 비교해 1억4천만달러(4.3%) 증가했다. 북한은 중국을 통해 첨단기술과 중저위 기술·중고위 기술 수입을 늘리고 있다. 최장호 팀장은 “대중수입 증가는 고기술 품목에 대한 수요 증가, 주민의 구매력 상승, 장마당 확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장마당은 2016년 12월 현재 404곳으로 파악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이 지난해 3월 <KDI 북한경제리뷰>에 기고한 ‘북한 종합시장의 지역별 분포와 운영현황’을 보면 전체 장마당 총 매대수는 109만2천992개다. 시장관리소 전체 인원은 6천375명으로 추정된다. 장마당 종사자가 109만9천52명이라는 뜻이다. 북한 전체인구의 4.4~4.6%에 해당한다.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화폐는 중국 위안화가 압도적이다. 양문수 교수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중국 위안화 56.8%, 북한 원화 42.0%, 미국 달러화 1.2%다.

북한 1인당 국민총소득 146만원
자영업 등 비공식 노동시장서 소득 얻어

북한 노동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7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를 보면 북한 국민총소득(GNI·명목)은 36조3천730억원이다. 남한(1천639조665억원) 대비 45분의 1 수준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146만원이다. 남한(3천198만원)의 22분의 1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을 월로 나누면 12만1천600원이다.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도 여럿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북한이탈주민 1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북한사회변동조사’에 따르면 공식 월평균 수입은 1만원 이하가 93.9%로 가장 많았다. 비공식 월평균 수입은 50만원 이하가 34.1%, 100만원 이하 13.6%, 100만원 초과 26.5%였다.

주된 수입 일거리를 보면 △소매장사 14.3% △되거리장사(되넘기장사·물건을 사서 곧바로 다른 곳으로 넘겨 파는 장사) 11.8% △외화벌이 10.9% △삯벌이(삯팔이) 7.6% △돈장사 5.9% 순이었다. 사회주의체제 북한에 자영업 같은 비공식 노동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에는 또 소속된 직장에 적이 있으나 출근하지 않고 일정한 금액을 소속된 직장에 지급하는 계약을 맺고 사적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존재한다.

개성공단 북한노동자 임금을 통해서도 북한노동자 임금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개성공단 최저임금은 70.4달러, 평균임금은 141.4달러다. 사회보험료를 포함하면 실제 지급액은 155.5달러다.

북한 여성노동자 산전산후휴가 240일

이철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남북한 사회복지 비교와 정책적 시사점’ 발표문(2016년)에 의하면 남한의 공적연금(국민연금·특수직역연금)에 비교할 만한 북한 공적연금은 노령연금·유가족연금·제대군인생활보상비가 있다. 고용보험 성격의 실업보조금은 개성공단·경제특구 기업과 외국기업에 적용된다. 산재보험 성격의 북한 사회보험은 폐질연휼금·노동능력상실연금이 있다. 의료보장은 남한은 건강보험을 통하지만 북한은 무상치료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복지서비스에서는 여성복지에서 획기적 변화가 보인다. 이철수 연구위원이 최근 통일포럼에서 발표한 ‘김정은 시대 사회보장동향’ 발제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015년 6월 사회주의노동법을 수정해 여성근로자 산전산후휴가 기간을 기존 150일에서 산전 60일과 산후 180일 등 240일로 확대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의 여성근로자에 대한 제도적 배려와 더불어 출산율 상승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북한 합계출산율은 1.94명으로 남한(1.33명)보다 높다.

양대 노총 “남북 노동단체 상호 이해·연구 필요”

북한 노동시장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정은 체제 이후 변화하는 노동시장과 노동법제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반도 평화시대를 대비해 북한 노동부문 연구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개성공단 재개 희망도 커지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북한의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쓰는 한편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북중 합작산업단지, 북한 해외인력 송출, 북한 내 임가공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 북한 학자들과 접촉하고 공동연구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현재는 북한 노동상황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 한계가 있지만 앞으로 현지 연구가 가능해지길 바란다”며 “그런 상황이 오면 북한 노동실태와 기본적인 서베이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계도 관심을 나타냈다.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은 “통일시대에 대비한다면 남북 노동자 간 상황을 이해하고 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남북한 노동단체도 이런 점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남북한 노동단체가 만나면서도 국가보안법 같은 제약으로 상호 접근이 어려웠다”며 “남북 노동실태와 연구성과를 교류하면서 남북 노동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