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답답한 정국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대폭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한 사회적 대화기구 불참을 선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출범하자마자 한 달이 넘도록 개점휴업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뒤 '노동계 패싱'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는 좌초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꽉 막힌 국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사회적 대화를 위한 정부와 노동계의 역할은 무엇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본사 회의실에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긴급좌담을 개최했다. 양대 노총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가 머리를 맞댔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사회를 봤고,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 수석전문위원이 함께했다.

이병훈 "노동체제에서 새로운 평화협정 체결했으면"
이주호 "정부 노동라인 한계, 대통령이 나서야"
정문주 "기재부 손보지 않고 노동존중 사회 없다"
박명준 "사회적 대화 위한 소중한 시간, 발로 차면 안 돼"


"사회적 대화로 풀겠다" 제안 걷어찬 국회

이병훈 :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국회 통과 이후 노정관계가 얼어붙어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요율 심의를 해야 하는데, 최저임금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만들고 현판식까지 했지만 이 또한 잘 돌아가지 않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노동개혁 과제를 앞두고 노정관계가 엉켜 있는 국면이다. 아무래도 최저임금법 개정을 놓고 지금 같은 사달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야기의 출발을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자.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정문주 : 최저임금은 소득주도 성장의 유력한 수단이다. 정부도 2020년까지 1만원을 달성하고, 최저임금에 가구생계비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국회에서 다뤄진 최저임금법을 보면 이런 기준들이 모두 무시됐다. 졸속으로 처리됐다.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가 없었던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까지 넣은 내용이 새벽시간 단 30분 만에 충분한 검토 없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노사자치주의도 위배했다. 5월19일 양대 노총과 한국경총이 최저임금위에서 6월 내 산입범위 문제를 풀겠다고 합의했는데 이를 무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제아무리 올린들 산입범위 확대로 까먹는 게 훨씬 많다. 올해 1월31일 1차 노사정대표자회의 이후 4개월 논의 끝에 5월2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만들어져 문이 열렸지만 같은날 최저임금법 때문에 도로 닫혀 버렸다. 원인 제공을 했던 정부·여당이 결자해지 자세로 개선조치를 얘기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주호 : 최저임금제도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와 노동계가 소득주도 성장과 저임금 노동자,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함께 손잡고 가야 할 정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산입범위 때문에 사달이 났다. 결과적으로 노정이 싸우고, 그것을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즐기는 어처구니없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양대 노총과 경총이 사회적 합의로 해결할 테니 최저임금위로 논의를 넘겨 달라는 제안을 부정하고, 정부·여당이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로 노정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누구와 노동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인지 궁금하다.

박명준 : 노사정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싸고 나오는 찬반 논리가 제대로 된 팩트인지, 제기되는 문제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를 놓고 일찍부터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런 시간과 기회를 놓치면서 국회로 최저임금 논의를 넘어가게 만들었다. 정치지형상 노동계에 훨씬 불리한 방식으로 결정이 났다. 아쉬운 건 정부가 이 과정에서 선제적이고 주도면밀한 사회적 대화를 기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계도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했어야 했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렇다고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광범위한 개혁과제·어젠다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 건 과도하다.

최저임금 해결 골든타임 놓친 노사정

이병훈 : 최저임금법 개정까지의 과정을 복기해 보자. 최저임금위에서 3월 초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국회로 공이 넘어가게 만든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주호 : 3월에 타이밍이 한 번 있었다. 당시 민주노총이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과 맞물렸는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까지 받아 달라고 했다. 시점이 안 좋았다. 또 하나는 올해 최저임금이 7천530원으로 올랐는데, 제대로 시행도 안 해 본 상태에서 경제지와 조중동이 떠드니까 정부도 마치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3월 합의가) 조직 안에서 수용이 안 됐던 이유다. 3월을 놓쳤기 때문에 한국노총 아이디어로 국회 안에 소위원회 만들어 논의하자고 했는데 잘 안 됐다. 마지막에는 경총과 함께 최저임금위로 넘기면 6월까지 요율과 제도개선을 마무리하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안 됐다.

정문주 : 정부 내 노동문제를 다루는 사령탑에서 전략적 미스를 범했다. 대표적인 게 노동시간단축과 최저임금이다. 당초 국정과제에서 제시했던 문제풀이 방식은 입법을 통하는 게 아니었다. 휴일·연장근로 중복할증 문제는 잘못된 행정지침을 변경하는 식의 행정상 조치로 충분히 가능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역시 하위법령 개정으로 가능했다. 두 가지 문제는 국회에 맡겼을 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들이기 때문에 행정라인에서 안정적으로 정리하자고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회에 맡겨 모든 게 어긋났다.

한국노총도 책임이 있다. 과거 적폐정권 시기과 비교했을 때 우호적인 분위기였는데도 최저임금 문제를 골든타임에 논의하지 못하고 실기했다. 크게 보면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최저임금위에서 문제를 풀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가 3월6일 소위원회 협상이었는데 그때 결단하지 못했다. 또 한 번은 5월24일 밤 9시 국회 법안심사소위(고용노동소위)가 열리기 전까지 노사정위 중재로 '노사정 주체들이 원포인트로 산입범위 문제를 풀어 오면 받겠다'는 국회의 답변이 있었는데 그때 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어느 한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정 모두의 문제다.

박명준 : 노사정 모두의 문제임에도 정부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3월6일 소위원회 협상 무렵이 골든타임이었다고 하는데, 정부가 사회적 대화로 최저임금 문제를 풀겠다는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적극 임했어야 했다. 지금 산입범위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제기를 감안해 보면 정말 풍부한 정책지식과 정보·자료가 제공되는 속에서 노사정이 집중적인 논의를 벌였어야 해결가능한 주제였다. 그런데 기존 최저임금위 작동방식에 살짝 얹어서 '해서 답이 나오면 좋고 안 나오면 할 수 없지'라는 태도로 임했던 것 같다. 한 사회적 대화기구에서의 파행이 사회적 대화체제 전체의 회의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메시지를 정말 가슴에 품었다면 이 부분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았어야 했다.

"정부, 사회적 대화 강화에 공들이고 있는지 점검해야"

이병훈 : 지금 상황이 파탄이라고 하면 싸울 일밖에 안 남았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 거 같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하겠다는 노동존중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꽉 막혀 있는 최저임금 정국을 풀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정무적 해법과 정책적 해법이 있을 텐데.

박명준 :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정부의 5년짜리 다양한 정책패키지가 정부 초기 국정과제로 세팅됐다. 지난 1년간 패키지 중 몇 개나 실현됐는지 따져 보면 '글쎄요'다. 노동시간단축·최저임금·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많이 얘기되고 있는데, 그것 말고도 사회양극화 해소와 노동권 신장을 위한 노동존중 사회 정책패키지 중 여전히 보따리에서 나오지 않은 게 많다. 이번 지방선거가 정부로 하여금 패키지를 풀어내는 데 속도조절을 하게 만든 하나의 이유였다면 지금 상황에서 좀 더 과감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도 있고, 사회안전망 강화도 있다. 최저임금의 궁극적인 목표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건데, 이를 부여할 수 있는 정책기제는 최저임금만이 유일한 게 아니다. 다양한 사회안전망 정책패키지를 입체적으로 활용하고, 정부 스스로 뚜벅뚜벅 가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노동계는 이번에 영혼의 상처를 입은 것 같다. 사회적 대화가 무시당했고, 결국 노동계가 무시당했다는 지점에서 실망감이 큰 거다. 많은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이 노동존중 사회와 사회적 대화를 말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적 대화를 우선하고 여기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고 갈까 생각하면 의심스러운 면이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회적 대화 자체를 보다 강화하고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

정문주 : 최저임금의 온전한 1만원 되찾기로 가야 한다. 원인 제공을 한 더불어민주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일단 한국노총과의 관계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를 함께 만들고, 정책협약을 통해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약속한 단위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필요할 때만 (한국노총을) 찾아오고 만나는 이상하고 웃기는 관계가 되고 있다. 신뢰과 존중, 정책협의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법 개정안 시행까지 6개월 남았다. 재개정 수준까지 가야 한다. 내년 최저임금 역시 온전한 1만원 달성에 가까운 수준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은 대통령이 쓸어 담아야 한다. 대통령께서 양대 노총 위원장 면담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양대 노총 위원장 만나야"

이주호 : 청와대에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더니 북핵문제·평화협정 등 한반도 문제 때문에 바빠서 어렵다고 한다.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 다 좋은데 노동 문제가 정말 그 모든 것의 뒤에 해야 할 문제인가. 노정관계는 정권 초기에 잘못 풀면 갈 길이 멀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해 노동을 다루는 사람이 정책실장·일자리수석·사회수석인데, 이런 말귀를 알아듣고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정부·여당에서 노동정책을 결정하는 '빅4'는 고용노동부 장관·경제사회노동위원장·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다. 한데 노동부 장관은 각론에서는 열심히 하지만 정무적으로 노동정책을 하는 것 같진 않다.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경사노위가 공식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힘이 안 실리고 있다. 일자리위 부위원장은 일자리에 국한돼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고는 그분(홍영표)이 치고 있는 거 아니냐. 범정부적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문재인 정부 노동라인의 근본적 한계 탓에 역설적으로 가장 바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병훈 : 6월은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기간이다. 마침 두 분(정문주·이주호)이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노동자위원을 사퇴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에 불참하고 있다. 자칫 노동 없는 최저임금 심의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현 국면을 타개하지 않고서는 최저임금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양대 노총의 입장인가.

정문주 : 최저임금위에 들어가서 내년 요율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워낙에 망가뜨려 놨기 때문에 30%를 인상하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원인부터 무효화시키는 방법을 찾고 들어가는 게 맞다.

이주호 : 밖에서는 '그래도 최저임금위에는 들어가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데, 흐트러진 제도를 정비하면서 당장 중요한 요율 문제를 같이 논의하자 이렇게 순차적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최저임금위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노정 전면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내부에서도 문재인 정부를 재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노동존중 정책은 파탄 났고, 어설픈 사회적 대화 얘기는 하지 말고, 희망고문을 걷어치우고 6·30 전국노동자대회를 계기로 전면전을 하자는 강경한 얘기들이다. 정부가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를 밟아야 할 때다.

이병훈 : 소득주도 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논의의 모든 것이 최저임금으로 몰리다 보니 과부하가 걸리고, 갈등이 중첩되는 상황인 것 같다. 실업부조나 다른 사회임금을 보강하는 식으로 소득주도 성장의 내용을 개선하는 정책적 해법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무적 상황 타개와 더불어 최저임금과 함께 다른 정책적 논의를 같이한다면 노동계는 수용할 수 있나.

이주호 : 정책적 논의는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중요한 포인트는 앞서 말했지만 양대 노총이 경총과 합의해 해결해 보겠다고 했는데도 무시하고 밀어붙인 과정에 대한 평가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얘기해 봤자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조할 권리 보장하자고 해서 스테이지를 옮겨 논의했는데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책적으로 논의할 수는 있지만 그에 앞서 정확한 평가를 하지 않으면 물타기가 될 수 있다.

정문주 : 사회적 대화와 노정관계를 정상화하려면 1차적으로 정부가 장사(정)포를 쏘지 말아야 한다. 일정한 냉각기간 이후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 줘야 하는데 연일 장사포를 쏘고 있다. 성과연봉제 지침이 폐기된 지 1년도 안 됐는데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어제(19일) 철밥통 공공기관 보수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기가 막히다. 기재부가 하는 모든 행위가 거의 반노동행위다. 문재인 정부 망하라고 굿을 하는 거 같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한술 더 떴다. 시행 열흘밖에 남지 않은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문제에 대해 처벌을 유예하겠다고 했다. 주 52시간 문제는 이미 시장에 10년 전부터 전달돼 왔고, 국회에서도 계속 법안이 상정돼 9부 능선까지 밟아 온 건이다. 6개월 전만 해도 경총 스스로 300인 이상 기업들은 다 준비됐다, 바로 시행해도 문제없다고 한 건을 최근에 와서 엄살을 부린 건데 총리가 그걸 수용하더라.

"사회적 대화 통한 문제해결 경험 필요"

박명준 : 정부가 점점 더 노동계에 문을 닫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방선거 압승이 '노동계 필요없다. 우리가 하면 되지'라는 자신감을 심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징후가 어제오늘 있었던 일(공공기관 보수체계 개편·주 52시간 처벌 유예)들 이라고 본다. 노동계는 대통령이 나서 노동계 손을 들어주는 식이 아니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될 것처럼 말하는데, 그날이 정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이 온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 반대 방향으로 갈 것 같은 정부와 여당 내 분위기를 다시 이쪽으로 끌고 올 수 있다. 노동계도 경사노위를 함께 만들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판단할 건 아니라고 본다. 이용가치가 훨씬 크다. 노동계가 원하는 여러 정무적 전제조건을 만드는 것도, 사회적 대화의 장에서 도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병훈 : 최저임금 해법과 별도로 문재인 정부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주호 : 청와대 초청행사 참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이나 1차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리네 마네 하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 '북한 김정은 만나는 것보다 더 힘든 게 민주노총'이라고 얘기하더라. 하나의 누적된 문화인 것 같다. 그동안 자신감 있게 정부와 대화하고 교섭한 경험이 있었다면 유연하게 갈 수 있었을 텐데 탄압받고 억압받고 반작용으로 투쟁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예전에 한 토론회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자가 사회적 협의주의자로 전향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민주노총 정책실장으로 와서 보니 합의주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안 되겠더라. 지금은 협의하면서 성과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의제별·업종별위원회에 구조조정특위·공공부문 비정규직특위 같은 현안이 녹아들면서 초기업 대화가 활성화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대화가 순항할 수 있지 않을까.

정문주 : 사회적 대화가 활성화되려면 노동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노동조합하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노조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온전한 노동기본권 보장과 산별 노사관계 체제, 두터운 이해대변·보호제도다.

이런 과정에서 '나쁜 정부'가 끊임없이 도발할 거다. 문재인 대통령 밑에 두 개의 정부가 있다. 나쁜 정부와 착한 정부다. 나쁜 정부는 대통령과 코드가 전혀 맞지 않는 부류다. 대표적으로 기획재정부다. 예산권을 쥐고 다른 부처의 국정과제 사업들을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정부 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모피아 기재부를 손보지 않고선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 수 없다. 기재부 내부를 혁신하게 만들고, 기획과 예산을 분리시켜 '청' 정도로 격하해서 힘을 빼야 한다. 공공부문 거버넌스에 사회적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게 바꿔 놔야 한다. 그러면 최소한 스웨덴에 버금가는 환상적인 국가가 될 거다.

박명준 : 한국은 국가관료 주도로 정책결정을 해 왔다. 노동계급정당이 없는 나라다. 정책 형성의 굵은 덩어리가 정부와 국회로 이미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책 형성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건 노동계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는 계속 차이고 있다. 저쪽에서 발로 찬다고 이쪽도 발로 차고 나가 버린다. 특히 민주노총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트랩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이주호 실장께서 '합의주의자가 협의주의자로 변했다'고 했는데 사실 굉장히 걱정스럽다. 노동계는 사회적 대화를 과거 보수정부에서는 '팔 비틀기'라고 했고, 진보정부에서는 '들러리'라고 비판했다. 팔 비틀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협의주의로 가는 건 좋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를 전술적으로만 활용할 생각이 아니라면 협의기구에 만족하거나, 저쪽에서 발로 찼으니 우리도 기분 나쁘니까 차 버리는 건 영양가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자세는 아닌 것 같다.

이병훈 : 최근 남북·북미정상회담 이후 평화협정까지 가는 길이 순풍 받듯 가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 왜 노동은 1987년 노동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돌아보게 된다. 87년 체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문재인 정부에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는 1년 만에 너무 큰 걸림돌이 눈앞에 놓여 있다. 소망컨대 노동체제에서의 새로운 평화협정이랄까. 87년 체제에서 벗어나 노동존중이 숨 쉬고 일자리와 소득주도 성장 등 여러 숙제들을 노사정 대화를 통해 해 나갈 수 있다면 정말 새 시대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위기를 잘 넘어갔으면 한다는 당부를 드린다.

정문주 : 노동존중 사회라는 좌표를 향해 순항을 하다가 잠시 궤도이탈을 했는데, 초반에 바로잡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다. 갈등과 대립적 관계를 빨리 청산해야겠지만 오히려 노동존중 사회로 가기 위한 성장통으로 알고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한반도에 봄은 왔는데 노동에 봄은 오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87년 체제를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그 혁신이 재벌이나 보수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무장해제를 뜻하는 건 아니다. 보편적 노동기본권 보장 확대와 노조할 권리 보장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양대 노총이 다시 한 번 머리띠 동여매고 혁신하도록 하겠다.

이주호 : 민주노총이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고, 툭하면 나간다, 믿을 수 없다'고 평가받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성을 알아 줬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김명환 집행부가 사회적 대화를 걸고 당선됐고 내부에서 정규직을 넘어 비정규직까지, 저지에서 쟁취로, 반대에서 참여로, 기업 안에서 사회 속으로,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가자는 내용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최저임금 문제가 잘 정리되고 9월13일 정책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 방침이 결정되면 노정·노사정 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촛불이 만든 이 국면에서 정부는 정부대로 노동은 노동대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

박명준 :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놓치면 상당한 시간 동안 도약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조직노동도 우리 사회에서 작지만 일정한 권력을 쥐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이 시대 문제를 푸는 데 한 방울까지 다 투자하고 때로는 자존심도 구겨 가고 때론 정말 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매달렸을 때 진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혁적인 방향으로 통 큰 행보를 못하게 만드는 상황논리는 너무 많다. 역사가 기억하는 건 누가 그것을 딛고 큰 걸음을 내디뎠느냐다. 나중에 누굴 탓하는 방식으로 이 시간이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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