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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도입 유예하라 떼쓰더니] 사용자들, 외주화·휴게시간 확대·법인 쪼개기 편법노동시간단축 무력화 방법 치밀하게 준비
   
▲ 한국노총은 지난 5월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시간단축이 임금저하나 노동조건 후퇴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지난 2월 국회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서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부터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노동상한제가 시행된다. 1주를 토요일·일요일을 제외한 5일로 규정해 최대 68시간(연장근로 포함 52시간+휴일근로 16시간)까지 가능했던 장시간 노동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상식에 맞게 법을 바꾼 것에 불과하지만 저항은 만만치 않다. 7월 시행을 앞두고 재계는 '법을 위반해도 6개월간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떼쓰는 재계 의견을 받아들인 정부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재계가 노동시간단축을 무력화하는 치밀한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은 법인을 쪼개 300인 이하 사업장으로 만들거나 교대제 변경·탄력적 근로시간제 같은 유연근로제를 통해 주 52시간제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채용을 늘리지 않고, 임금을 더 많이 주지 않아도 되는 갖가지 대응책을 이미 갖고 있었다. 정부 도움 없이도 두렵지 않은 7월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편집자>

"봉화를 피어 올렸더니 불나방이 덤벼들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시작된 인사노무 컨설팅업체들의 공격적 마케팅을 점검해 온 내셔널센터 노조간부의 말이다.

근기법 개정안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과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은 올해 7월1일부터, 50인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된다. 무제한 노동이 가능했던 노동시간 특례업종은 26개에서 5개로 축소됐다. 노동시간 특례에서 제외된 21개 업종 중 300인 이상 사업장은 7월1일부터 주당 68시간으로 제한되고 내년 7월1일부터는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노동시간단축으로 우리 삶은 바뀔까. 고용노동부는 최근 배포한 '노동시간단축 현장안착 지원 대책 가이드북'에서 "노동시간단축으로 신규채용은 최대 13만7천명에서 17만8천명 늘어나고 산업재해도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창출로 국가경쟁력이 강화된다"고 홍보했다.

노동시간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주장의 근거는 단순하다. 노동자들을 주당 68시간 일을 시키는 기업이 주당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할 일은 그대로인데 일할 사람은 부족하니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생산량을 줄이든, 사람을 뽑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단축-일자리 창출' 선순환할까

재계는 이 같은 바람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국경총은 지난 19일 "기업 신규채용이 연말·연초에 집중돼 있고, 능력 있는 인재 선발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단속과 처벌보다는 6개월의 충분한 계도기간을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이튿날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청와대는 고위당정청회의를 열어 '6개월간 계도기간'과 '처벌 유예기간'을 두기로 결정했다. 연말까지 노동시간단축을 하지 않아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6개월 시간을 번 기업들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3월 한 대형 법무법인 홈페이지에 '근로기준법 개정 주요 내용과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안내 글이 등록됐다. 이 법인은 사용자들에게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구체적 대응방안으로 △교대제 근무방식의 변경 △유연근로시간제도 활용 △휴게시간 확대를 통한 연장근로 감소 △일정 업무의 외주화와 단시간 근로자 활용을 제안했다. 노동강도를 올리고 휴게시간을 늘려 명목상 노동시간을 줄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외주화와 비정규직을 사용하라는 의미다. 어디에도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노사가 협상하고, 인력을 채용하라는 말은 없다.

준비기간이 부족하다는 재계의 볼멘소리는 뜬금없다. 노사정은 2010년 6월 노사정 합의로 실근로시간을 2020년까지 1천800시간대로 단축하기로 합의했다. 노사정은 2015년 9월13일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에서 이를 재확인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주 52시간제를 핵심으로 하는 근기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 이어 지난해 대선에서도 노동시간단축을 공약으로 냈다.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더라도 노동시간단축 방향은 바뀌기 힘들었다. 준비시간은 충분했던 것이다.

재계는 이미 노동시간단축에 대응전략을 마련했다. 대형 법무법인이 예시한 교대제 변경·유연근로시간제·법인 쪼개기·외주화·비정규직 채용 같은 회피전략을 추진했다.

인력충원 없이 교대조 늘리고
매장 통합해 인력 줄이고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22일 인천국제공항 승객 보안·검색 하청업체 세 곳을 노동부에 고발했다. 교대제를 개편하면서 직원들에게 강압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이들 업체는 모두 300인 이상으로 7월부터 52시간제 적용을 받는다.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 이내로 단축하기 위해서는 인력충원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이들은 조를 늘리고 조당 인원을 줄이는 꼼수를 썼다. 3조2교대 혹은 4조3교대제를 12조8교대제로 변경했다. 노동자들은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하게 변했고 이전에 없던 새벽 출근과 야간근무가 생겼다고 토로했다. 세 업체는 "인천공항공사가 인력채용을 위한 도급비를 올려 주지 않아 불가피하다"고 변명했다.

인천항만공사 자회사인 인천항보안공사도 상황이 비슷하다. 3조2교대에서 4조3교대로 교대조를 늘리고 조당 인원을 줄였다. 주당 52시간을 넘기지 않게 됐지만 조당 인원이 줄어든 탓에 노동강도 강화가 불가피해졌다.

백화점 판매 노동자들은 이번 근기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다음달부터 주 68시간, 내년 7월1일부터 주 52시간제를 적용한다. 시행까지 시간은 남았지만 회사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백화점 영업시간 내내 일하는 판매노동자들은 대개 하루 11시간가량 일한다. 때에 따라 조금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시차를 사용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최근 회사는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시차 사용시간을 늘리는 추세다. 매장 문을 열고 닫는 시간대에 나홀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매장을 통합해 인력을 줄이는 방식도 최근 1년 사이 본격화하고 있다. 여러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E화장품·L화장품 회사는 백화점 내 같은 계열사 매장을 통합하는 멀티매장(셰어링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간 매장별로 3명이 일했다면, 2개 매장을 통합한 멀티매장에는 4~5명이 일하는 식이다.

 유연근로시간제 활성화할까

정부는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해 유연근로시간제도 개선·활성화를 준비하고 있다. 유연근로시간제의 한 종류인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이 많을 때 많이 일하고, 한가할 때 적게 일해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기준에 맞추는 제도다. 노사가 합의하면 3개월 이내 단위기간 동안 특정주의 노동시간을 52시간까지 허용한다. 연장근로 12시간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 64시간까지 일을 시켜도 된다. 다만 적용 기간 중 평균 노동시간은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연장근로수당 삭감과 장시간 노동 유발 효과를 낳는다. 예컨대 한 기업이 3개월(12주) 동안 6주는 64시간 일을 시키고 나머지 6주는 16시간 일을 시키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용했을 경우 평균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다. 첫 6주 동안 주당 24시간 연장근무가 발생해도 초과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다.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하지만 계절에 따라 노동시간 격차가 매우 큰 골프장 노동자나, 수주 여부에 따라 일감이 정해지는 선박 설계 등의 업무에서 불가능한 경우는 아니다. 실제 경남지역 K골프장과 H중공업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을 언급해 노조가 긴장하고 있다.

휴일·연장근로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발전소 하청업체들도 이 제도 도입에 적극적이다. 원청 발전사가 계획정비 기간을 정하면 이 기간 동안 하청 노동자들은 휴일·연장근무를 한다. 계획정비 기간은 반기별로 45~60일 정도다. 이 기간에는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체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노사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발전소 하청업체 I사는 최근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행 합의서' 서명을 노조에 요구했다. K업체도 도입추진안을 만들어 노조에 전달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원청 발전사가 인력충원과 임금저하 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하청사들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목을 매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인 쪼개기·외주화도 추진

근무형태 변경 같은 복잡한 방법을 준비하는 기업은 그나마 양반이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사 D업체 직원은 314명이다. 이 회사는 올해 초 법인을 하나 더 만들어 사무직들을 전적시키는 방식으로 300인 이하 기업 2개를 만들었다. 경기도 평택의 또 다른 자동차 부품사도 똑같은 수법을 썼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 52시간제가 7월부터 적용되지만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시행된다. 1년 반의 시간을 벌어보려 법인 쪼개기 꼼수를 쓴 것이다.

금속가공업을 하는 경남의 S업체는 평소 연장근무가 수시로 발생해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는 사업장이다. 직원은 100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회사는 최근 "앞으로 주중에 모든 업무량을 처리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임금은 줄이고 노동강도는 올리겠다고 선전포고했다. 경남에서 멤브레인 필터를 제조하는 C회사는 부분 외주화를 추진하려다 노조가 반발하자 계획을 잠시 중단했다. 반면 인력을 채용하고 교대제를 개선하는 기업은 찾기 힘들다.

주 52시간제를 회피하기 위한 사용자들의 움직임은 재빠르고 구체적이지만 노동계의 대응은 더디다. 민주노총은 최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실질임금 보장과 인력확충, 노동시간단축 취지를 훼손하는 유연근로시간제 등을 저지해야 한다는 대응방향을 정했다. 연장이나 잔업·특근에 의존하지 않는 기본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에는 노동시간단축 위반 사업장 근로감독을 강화하라고 요구한다. 사업장별 대응은 산별노조·연맹 차원에서 맡는다.

한국노총은 20일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퇴직급여 감소 예방 대응 지침을 배포했다. 조만간 사용자의 일방적인 노동시간·휴게시간 변경 행위에 대처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지침을 추가로 만든다. 지침에는 법률적 대응 방법과 교섭 방안을 포함할 계획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는 사용자들에게 노동시간을 반드시 단축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지 못하고 오히려 계도기간을 확대하며 물러서는 모양을 취했다"며 "사용자들이 유연근로시간제나 휴게시간 확대같이 노동시간단축 취지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일 경우 노사가 부딪치겠지만 노조가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총연맹 산하 전체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며 "실질임금 감소 여부와 노동시간단축 효과를 조사하고 문제점을 파악해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제정남·윤자은 기자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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