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실로 대법원의 용감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비록 지난 근로기준법 개정에서 휴일근로에 대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고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는 것을 국회가 입법했지만 이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봤다. 설마 법원이 그것도 대법원이 “일주일은 5일”이라고 소리 높여 외칠 줄은 몰랐다.

끝내 일주일을 5일로 만든 그들의 논리는 놀라움 자체였다. 판결 이후 대법원은 공보관실 자료로 “구 근로기준법이 유급의 주휴일을 보장하고, 휴일근로에 대해 연장근로 및 야간근로와 동일한 가산율에 따른 가산임금을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구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1주간 기준근로시간과 연장근로시간은 휴일이 아닌 소정근로일을 대상으로 근로시간의 규제를 의도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밝히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는 법이다. 따라서 법이 중복적인 가산임금(수당)을 규정한 이유는 사용자에게 금전적 부담을 줌으로써 노동자들의 당연한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대법원은 오히려 이를 ‘일주일은 5일’의 근거로 내놓고 있으니 그들의 ‘노동’ 이해도는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대법원의 이어지는 논리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자료에 따르면 일주일에 휴일이 포함되는지 여부는 근로기준법 입법 당시 입법자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 말한다.

일주일의 정체성이 논란이 된 이유는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이었지 ‘법’은 아무 죄도 없다. 하지만 법관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관심법’을 통해 당시 입법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니 요즘 말로 참으로 ‘신박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화룡점정. 대법원은 일주일이 5일이라는 것은 “근로관계 당사자들에게 일종의 사회생활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일주일을 7일로 생각했던 모든 노동자들은 사회 부적응자였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대법원의 용감함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결국 최근 국회의 근로기준법 개정을 방패삼아 “(지금 와서 진실을 얘기해 봐야) 법적 안정성을 깨뜨릴 수 있으니” 그냥 과거는 묻고 가자고 얘기한다. 정말 그래야 하나? 그래도 어쩌나.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고, 일주일은 7일인 것을.

이 사건이 대법원에 상고된 지 6년반,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338주에다 일주일에 끼지 못한 수백일의 토요일과 일요일을 보낸 세월, 만에 받은 결과 치고는 깃털만큼도 무겁지 않다.

마지막으로 소송 당사자였던 성남시 환경미화원들과 일주일은 당연히 7일이라고 믿고 있었던 노동자, 국민을 대신해 김주대 시인의 <법관 위에 시민 있다>는 시 가운데 일부를 대법관들에게 보낸다.

“(전략) 우리는 환경미화 전문가/ 너희들이 버린 쓰레기가 너희들을 더럽힐까 봐/ 너희들 눈에 띄지 않게 치우고 줍고/ 너희들이 화장실에서 묻혀 온 더러운 발자국을/ 대법원 복도마다 소리 없이 지워 주었다 (중략) 너희들은 우리가 언 손 불며 돈 벌어 월급 주며/ 우리가 고용한 알바생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개 숙였다// 너희들은 우리가 법의 이름으로 고용한 알바생들이다/ 그래서 따랐고 인정했고 심지어 복종했다/ 너희들은 우리 국민이 고용한 임기 6년의 장기 알바생들이다/ 대법원장인 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원장은 대법관이 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 대통령을 우리가 뽑았다/ 너희들의 위에 법이 있고 법 위에 우리가 있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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