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은행 노조가 파업을 시도한 것은 이번까지 모두 두번. 첫번째 파업시도는 1차 금융구조조정을 앞둔 지난 98년 9월 29일이였다.

인원 감축을 놓고 벌어졌던 당시 협상에서 금융노련 지도부는 막판 공식협상이 결렬되자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일부 은행들의 이탈로 실제 파업은 성사되지 못했다. 98년 9월 당시와 2000년 7월 현재 파업의 차이점을 살펴 본다.

■협상 쟁점 차이 크다.

98년 파업과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차이는 협상 쟁점. 98년에는 양측간 협상가능한 분야가 쟁점이였던 반면 이번에는 법적으로 협상 대상이 아닌 정책적 분야가 쟁점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당시에는 인력 감축과 퇴직위로금 지급 폭을 놓고 파업이 예고됐지만 이번에는 관치금융 철폐, 은행부실 정부 부담, 강제합병 반대 등이 쟁점이다.

이번 협상에 물꼬가 쉽게 터여지지 않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98년에는 정부와 은행측이 협상에 나서는 노조에 내놓을 협상안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시 인력감축 35%, 6개월분 퇴직 위로금 지급과 30% 감축에 12개월치를 놓고 협상하던 노사는 33% 감축에 직급별 차등 지급이라는 해법을 도출해 냈다.

■이번에는 은행장이 빠졌다.

98년에는 파업은 노사(勞使)협상이였는데 반해 이번에는 노정(勞政)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협상 테이블에는 노조와 이헌재 재경부장관과 이용근 금감위원장이 마주 앉았다.

은행장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98년에는 9개 노조위원장과 9개 은행장들이 마주 앉았다. 협상 말기에 감금까지 당하면서도 은행장들은 협상의 전면에 있었다.

98년 정부는 파업 전날 김대중대통령이 기자회견 형식으로 파업 자제를 촉구했고,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이 파업지도부가 농성중인 명동성당을 한차례 방문한게 전부였다.

■노조원들의 열의가 다르다.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외환 등 9개 은행이 참여한 98년과 이번 파업은 그 열기에서 사뭇 차이가 난다. 전 은행이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애초 파업을 하겠다고 한 은행들은 중도 탈락 없이 파업 강도를 착착 높여 나갔다.

반면 이번 파업에는 하나 수출입 농협이 일찌감치 파업 불참을 선언한데 이어 한미 신한 제일 주택은행도 불참 대열에 동참했다. 소위 우량은행은 빠진 `김빠진 파업'이 시간이 갈수록 진행된 셈이다.

■창구도 분위기도 다르다.

98년 당시에는 추석을 앞두고 창구 혼잡이 대단했다. 정부도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부도는 유예해주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대비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와 은행들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불참은행이 많아 긴장감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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