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내년 법정최저임금 결정 시한이 다가온다. 문재인 정부 공약대로라면 올해도 두 자릿수 인상이 불가피하다. 보수야당과 기업단체들은 기를 쓰고 반대할 것이고, 노동계는 공약 이행을 요구할 것이다. 이 와중에 여당은 법을 개악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디게 만들어 놨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법 재개정까지 논란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 16.4% 인상이 올해 고용과 소득에 미친 영향을 두고 전문가 사이 갑론을박도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한국 사회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혼란 속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과연 최저임금이 저임금과 임금격차 확대라는 우리 시대 최대 난제를 풀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일까? 최저임금이 정부 경제정책을 대표할 만한 제도일까?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강조하는 근거는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이 이론은 노동생산성 상승의 결과로 임금이 상승한다는 주류경제학 이론을 뒤집은 것이다. 임금(정확하게는 임금분배율)이 상승해야 노동생산성도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따르면 법정최저임금을 올리면 임금분배율이 높아지고, 기업들은 이윤을 보장받기 위해 투자를 늘려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킨다. 정부는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이론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첫째, 기업 투자가 곧바로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에 문제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자본투자가 증가해 자본집약도(1인당 자본재량)가 상승해도 기대만큼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지 않고 있어 그 원인을 두고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이후 계속 나타나는 바다. 그런데 자본집약도 증가분보다 노동생산성 증가분이 낮으면, 임금을 깎는 것이 아닌 한 이윤율(투자한 자본에 대한 수익률)이 하락한다.

여기서 소득주도 성장론이 딜레마에 부딪힌다. 임금을 하락시키면 ‘소득주도’에 배반되고, 임금을 그대로 두면 이윤율 하락으로 투자가 감소해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와 ‘성장’이 함께 하려면 자본투자가 충분한 노동생산성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전제(즉 자본생산성 상승)가 성립돼야 하는데, 현재 세계 경제나 한국 경제나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둘째, 법정최저임금이 임금분배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 역시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분배율에 영향을 미치려면 고용이 감소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 한계사업체에서 고용이 감소할 때, 다른 사업장에서 그 고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시간만 줄거나, 아예 실업이 늘어날 경우 임금총액(또는 임금분배율)이 증가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경제는 고용을 흡수할 만한 산업들이 침체를 겪고 있다. 고용효과가 없는 첨단 정보통신기술산업만 나홀로 성장 중이다. 고용흡수력이 있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건설업은 몇 년 내 호황을 기대하기 어렵다. 법정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로 이어지기 쉽고, 결국 임금분배율에도 크게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런 주장들은 대부분 아전인수일 뿐이라 신뢰하기 어렵다. 고용감소에 대해서는 경기침체 탓이라 주장하고, 고용증가에 대해서는 소득주도 성장 덕이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요컨대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계층 소득을 올리면서 경제성장도 달성하겠다는 정부 경제정책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성공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자본주의 경제라는 구조 앞에서 정의롭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운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의 최저임금 1만원 요구 역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몇 년간 저임금 문제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최저임금 1만원이 효과를 발휘했다면, 정부가 희망과 실제 효과 사이 모순을 드러낸 만큼 저임금-임금격차 문제 해결의 프레임도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저임금-임금격차 문제에 대한 노동운동의 해법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노조다운 해법, 즉 단체협약 확대와 혁신에 있다고 본다. 최저임금이 임금과 고용의 시장법칙을 강조한다면, 전국적·산업적 단체협약을 통한 임금규제는 사회적인 임금 표준 또는 계급적 단결을 강조한다. 그런데 실제 임금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계급적 단결 효과다.

계급적 단결이 중요하다는 것은 원칙과 관련한 것이 아니다. 정세적 이유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계급적 단결이 중요하다. 저임금·임금격차 문제 해결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의 몫을 줄이는 것과 함께 고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과 고용을 계급적 연대를 위해 변화시켜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현재 국민소득 수준으로는 자본의 이윤을 0으로 만들어도 전체 노동자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의 평균 연봉 7천만원을 받을 수 없다. 즉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며 임금격차를 줄이려면 노동자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단체협약은 사용자와의 협약이지만 동시에 노동자 내부의 합의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현재 가장 절실한 것은 노동자 내부의 합의서다.

물론 이런 주장은 10% 내외의 노조 조직률, 초기업적 단체협약을 제약하는 법·제도, 대기업 공공기관 기업노조들의 소극적 태도 등을 감안하면 꿈같은 이야기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최저임금 1만원과 전국적·산업적 단체협약 중 무엇이 더 저임금-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 방법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전국적·산업적 단체협약이라고 답할 것이다. 전자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인 데 반해, 후자는 대중운동을 통해 달성 가능한(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는 비슷하게 이뤄 내기도 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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