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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다 뺏기
   
▲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아직 뺄셈을 잘하지 못한다. 한 자릿수 뺄셈은 손가락을 굽혀 가며 하지만 두 자릿수 뺄셈에서는 (양말을 신은 발을 포함해) 신체는 무용지물이다.

휴일 두 시간을 부녀는 뺄셈을 가지고 씨름을 했지만 도통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예컨대 14에서 8을 뺄 때 4에서 8을 뺄 수 없으니 앞자리 10을 빌린다는 것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4에서 8을 빼야 하는데, 음…” 하면서 애꿎은 4개 손가락만 굽혔다 폈다 했다.

답답한 나는 결국 특단의 방법을 내놓았다. 아이가 아끼는 인형 열네 개를 꺼내서 아이 앞에 펼쳐 놓았다.

“자, 여기 인형 열네 개를 아빠가 사 줬어. 그런데 여기서 여덟 개를 가져갈 거야. 몇 개 남아?”

그러자 아이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곤 뜻밖의 말을 뱉어 낸다. “왜, 줬다 뺏어요?”

세상의 수많은 쩨쩨하고 치사한 일 가운데 하나가 ‘줬다가 뺏는 것’이다. 아이가 분개하고 급기야 뺄셈을 가르치던 아빠를 사과하게 만든 것은 줬다가 뺏는 잘못된 방식을 예로 들었기 때문이다.

‘소유효과’라는 이론이 있다. 소비자들은 이미 소유한 제품을 소유하기 전보다 더 높게 가치를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마케팅에서 많이 쓰이는 체험 이벤트가 바로 그것이다. 상품을 일정 기간 써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 조건 없이 100% 환불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 반품하기보다는 그 물건을 그대로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다고 한다. 물론 제품 효능에 만족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 제품에 익숙해지고, 소유 개념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추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많은 국민과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지분(소유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자임했다. 그러하기에 문재인 정부가 밝힌 100대 국정과제는 장밋빛이었다.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해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민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동존중, 차별 없는 공정사회라는 전략을 세우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법·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약속했다.

그렇게 이 정부는 국민과 노동자에게 ‘나라다운 나라’의 희망을 줬다, 가 최저임금법 개악 한 방으로 빼앗아 갔다.

노동자의 최저수준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은 건드리지 않을 줄 알았다. 대표적인 박근혜표 노동개악이었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지침이 아닌 법으로 더 강력하게 살아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개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록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22만원을 올려 주고 (산입범위 조정으로) 20만원을 깎자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다시 말해 ‘줬다 뺏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여당 간사가 말해 놓고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이 통과된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국책연구기관에서는 ‘속도조절론’ 보고서를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에게 ‘부정확하고, 편의적이며, 부적절하다’는 민망할 정도의 뭇매를 맞았다. 청와대와의 불협화음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은커녕 사회적 대화도 그러하거니와 당장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도 파행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해답은 누가 내놓을 것인가. 국무총리의 말대로 “노동현안에 청와대가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각 부처가 적극 대응”하면 풀릴까. 그럴 만한 능력과 소통구조를 각 부처는 가지고 있기는 한가.

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노동자들은 지난 선거에서 영표(그 영표 아니다)를 줬을 것이다. 우리도 한번 줬다 뺏어 보자. 내가 준 표(그 준표도 아니다) 다 내놔라!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이은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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