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하의 사법농단 사태가 일부 드러나면서 엄정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 재판거래 피해자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전교조·철도노조와 KTX열차승무지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콜텍지회·갑을오토텍지회 등 사법농단의 최대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정의를 요구하며 나섰다. 지난 5일에는 17개 피해단체가 사법농단 사태의 책임자·관련자를 공동 고발했고, 119명의 법률가들이 대법원 앞 시국농성에 돌입했다.

대법원장이라는 헌법기구의 주도로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재판 개입이 이뤄지고 비판적인 판사들에 대한 사찰이 자행된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엄정한 수사를 진행하고 재판거래 피해를 원상회복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대법원의 좌고우면하는 태도도 문제이지만, 정부의 침묵과 수수방관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삼권분립’이라는 명분 때문에 정부가 나서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는 있다. 그러나 재판거래의 수혜자가 역대 정부였던 만큼 피해자들의 원상회복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 단적인 예로,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로 드러난 증거만 봐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정당성을 갖지 못한 점이 분명하다.

1989년 결성된 전교조는 1999년 교원노조법 입법으로 법내노조 지위를 쟁취했다. 교원노조법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교원의 범위를 제한하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일부만 보장하는 등 출발부터 헌법과 국제노동기준에 미달하는 특별법의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와 노동자대투쟁의 자장 속에서 전교조를 비롯한 민주노조는 이미 사회적 시민권을 얻고 있었고, 법률의 제약을 넘어 헌법적 권리를 획득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그런 의미에서 노동기본권 보장의 역사를 거스르는 국가폭력이었다. 노조 결성에 앞장서다 희생된 해고자를 끌어안는 것은 역사적으로 민주노조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법내노조로 인정받았던 시절에도 해고 조합원들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조합원 범위 제한이라는 녹슨 칼을 들어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어 버렸다.

이번에 일부 공개된 사법농단 관련 문건에는 전교조가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집행정지 신청을 1심과 2심 법원이 인용하자 “BH(청와대)가 크게 불만을 표시하고 비정상적 행태로 규정”했다고 하면서, 대법원에서 노동부의 재항고를 인용해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BH와 대법원 모두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결정의 정치적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시점까지 검토·제시하고 있다. 이 문건대로 실제 2015년 6월 대법원은 노동부의 재항고를 인용해 “전교조를 법외노조 상태로 되돌려” 놓았고, 이를 정부의 4대 부문 개혁을 강력하게 지원한 ‘대법원의 성과와 활동’으로 자랑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전교조에 대한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전교조와 조합원들이 입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 역시 분명하다. 부당한 법외노조 통보를 철회하고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원상회복하면 된다.

그러나 ‘노조할 권리’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태도 역시 모호하기만 하다. 전교조·공무원노조뿐만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를 조합원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2009년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에 노동부가 내린 ‘규약 자율시정명령’ 역시 아직까지 취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비전속적 기사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대리운전노조의 노조설립 신고가 반려됐다. 이처럼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행정행위를 즉각 취소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 역시 재판거래의 암묵적 수혜자임을 시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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