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박근혜 정권을 거꾸러뜨리는 도화선이 된 노동자가 환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수감복 대신 걸친 투쟁조끼가 주인을 기다린 듯 꼭 들어맞았다.

시종일관 차분했던 어조가 문재인 정부를 논할 때 거세졌다. 자신을 “담장 안 죄수에서 담장 밖 죄수가 됐다”고 소개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얘기다.

민주노총이 31일 오전 서울 정동 대회의실에서 한상균 전 위원장 석방을 기념해 언론사 공동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한 전 위원장은 이달 21일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2015년 12월 구속된 지 894일 만의 일이다. 그는 2015년 11월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를 주도하며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민중총궐기는 1년 후 벌어진 촛불혁명의 시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상균 전 위원장은 “출소 뒤 일주일 정도가 지났지만 예상치 못한 가석방이라서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해 아직도 어리둥절하다”며 “옥살이 중에 과분한 관심과 응원을 보내 주신 분들이 너무 많았는데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출소 후 사회 아픈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첫 주말이었던 26일에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 갔다. 그곳에 잠든 백남기 농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백남기 농민의 딸인 백도라지씨를 만나 청산되지 않는 적폐에 관해 얘기하며 “더 이상 울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한 전 위원장은 “백남기 어르신은 박근혜 정권에게 당한 가장 억울한 피해자로 그분을 위해 산 자의 몫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고 “따님과 함께 이제는 슬퍼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했다”고 전했다.

백남기 농민은 민중총궐기 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 이듬해 9월 향년 68세로 사망했다. 한 전 위원장은 "새로운 노동운동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장 안 조직노동자의 생존만을 지켜서는 '민주노조'로 부르기 어려운 시대"라며 "조직노동자가 사회 변화를 파급력 있게 이끌어 내려면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기댈 언덕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전 위원장은 특히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과 재벌개혁 의지를 낮게 평가했다. 그는 "촛불 민심의 요구는 사회 불평등 해소인데, 삼성의 노동적폐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법 개악에서 보듯이 호기를 놓치고 있다"며 "노동기본권 후퇴로 이명박-박근혜 정권과의 연속성을 보이면 결국 민심은 냉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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