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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소리가 공장과 굴뚝에 가 닿기를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병역특례업체에서 일하는 한 청년을 만났다. 회사는 특례병 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해 잔업과 고강도 노동을 강요했다. 함부로 대했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노동자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참으라"고, "사회생활이 다 그렇다"고 했다. 왜 부당한 일을 참아야 하는지, 불합리한 현실을 왜 그냥 견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힘이 없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침묵을 강요한다. 노동자는 화가 치밀 때에는 기계에 머리를 넣고 싶은 욕구가 치민다고 했다.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노동자는 자신에게 화를 낸다. 무기력해지고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니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말해야 산다.

경북 구미에 한국합섬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2007년 회사가 문을 닫은 후 스타플렉스라는 회사가 공장을 인수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던 노동자들은 왜 우리가 쫓겨나야 하는지를 물었다. 새로운 회사가 공장을 인수했으니 고용을 승계하고 노조를 승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동료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텅 빈 공장에서 5년간 싸워 고용승계에 합의했고 노조도 지켰다. 그런데 회사를 인수했던 스타플렉스는 다시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헐값으로 공장을 인수하고 되파는 전형적인 먹튀였다.

이제는 더 적은 수의 노동자들만 남았다. 여전히 사회는 노동자들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업체 폐업을 이유로 한 해고니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뿐 스타플렉스가 그 먹튀로 얼마나 이익을 남겼는지, 그들은 어떤 책임을 졌는지를 묻는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 왜 노동자들만 업체 폐업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불합리함을 말하지 않을 때 일터는 점점 지옥이 되기 때문이다. 2014년 스타플렉스 노동자 한 명은 공장 굴뚝에 올라갔고, 무려 408일 동안 하늘 위에서 외쳤다.

굴뚝의 목소리에 화답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희망버스가 가기도 하고 사회적인 연대의 목소리들도 높아졌다. 마침내 회사가 응답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다시 약속했다. 고용을 승계하고, 노동조합도 승계하고, 단체협약도 승계하겠다고. 노동자들은 그 약속만 믿고, 아무 연고도 없는 충북 음성의 파인텍 공장으로 갔다. 그런데 공장은 껍데기만 있는 곳이었다. 생산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곳이었다. 단체협약을 승계하겠다던 약속도 사라졌다. 그 약속이 408일간의 외침을 잠재우기 위한 속임수임을 깨달았다. 또 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목동 본사 앞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두 명의 노동자가 올랐다. 그 날짜가 오늘로 200일이 된다.

우리 사회는 억울한 노동자들에게 한 가지만 강요했다. “가만히 있어라!” 그 방법도 다양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판결 거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법원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정당화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는 “법이 그렇게 말하니 침묵하라”고 했다. 경찰은 하늘 위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은 불법"이라고 했다. 법원은 하늘 위에 올라가 외치는 두 명의 노동자들에게 하루에 50만원씩 퇴거강제금을 내라고 했다. 돈으로 압박하고 법으로 압박하며 노동자들에게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스타플렉스 사장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는 이들은 드물다.

왜 노동자들이 자꾸 굶고, 고공농성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며 바닥에 몸을 눕히는지, 왜 몇 년씩 자신의 삶을 버려 가며 농성장을 지키는지, 왜 사법처리 위험을 무릅쓰고 점거를 하고 항의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권리가 없을수록 더욱 짓밟히는 세상에서 말하지 않고 침묵하면 노동현장은 더더욱 지옥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 견디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원망하게 되고 기계에 머리를 넣고 싶은 욕구가 생길 만큼 고통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노동자 목소리는 점점 들리지 않고, 결국 죽음의 길을 가게 될 노동자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파인텍 노동자들의 굴뚝농성이 200일을 맞았다.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장이 잘못한 거라고,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정리해고해도 된다는 판결이 잘못된 것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함께 외치자. 그렇게 외치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 가 닿기를. 지금도 공장에서 죽음의 욕구와 싸우고 있을 특례병을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에게 가 닿기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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