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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의 산업재해 승인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광주법률원)
   
▲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광주법률원)

망인은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던 중 버킷림프종으로 사망했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망인의 질병이 과로로 발병했다고 주장하며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부지급 처분을 했다.

유족은 억울하지만 공공기관인 공단이 잘 판단했을 거라 믿고 받아들였다. 그러던 중 망인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유사한 질병으로 돌아가신 노동자의 유족이 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작업환경측정을 통해 벤젠 노출을 확인하고,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며 유족급여를 지급했다.

유족은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망인이 돌아가신 때로부터 4년5개월이 지나 다시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유족은 공단이 다른 유족에게 유족급여를 지급했으니 자신에게도 지급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공단은 망인의 질병과 업무 간의 인과관계는 인정되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부지급 결정을 했다. 유족은 또 억울하지만 공단이 잘 판단했을 거라 믿고 받아들였다.

유족은 억울함을 품고 지내던 중 산업안전 문제에 능통한 활동가(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금속노조 등에서 산안을 담당했고 현재는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활동 중인 문길주 국장)를 오래간만에 만났다. 활동가는 유족에게 가능성이 낮더라도 다시 한 번 신청해 보라고 제안했다.

나는 처음 상담을 하며 유족의 억울함에 공감하면서도 소멸시효 항변에 재항변할 수 있을지, 인지대 송달료 등 소송비용이 들어갈 텐데 힘들게 지내시는 유족에게 괜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도 유족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해서 망인을 향한 슬픔을 다시 꺼내게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그럼에도 법원 판단까지 받아 보는 것이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 사건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가 업무상질병 등으로 노동자 또는 유족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그 취지에 따라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적용돼야 한다. 법률 지식이 없는 노동자가 소멸시효 완성 전에 유족급여 청구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행사했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의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의무 해태 등 과실이 결합해 불승인된 것이다. 공단이 소멸시효 항변을 한다면 피재 노동자 보호를 위한 헌법과 산재보험법의 입법목적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공단의 소멸시효 항변이 공익과 행정목적에 반해 부당하거나 권리남용으로서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망인이 돌아가신 때로부터 9년이 지난 시점에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다시 부지급 결정을 했다. 행정심판에서는 위법성뿐만 아니라 부당성까지 판단하는 점에 기대하며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를 했으나 기각됐다. 유족과 활동가는 어차피 기각될 것을 예상했다며 애써 서로를 위로했고,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행정소송에서는 근로복지공단의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을 주장하기 위해 공단이 최초 부지급 결정시 조사의무를 해태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이를 위해 공단이 역학조사 등을 통해 망인의 회사에서 벤젠이 노출된 사실을 최초로 인지한 시점, 벤젠 노출로 인한 업무상질병을 인정한 최초 사례, 버킷림프종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한 최초 사례에 관해 석명 신청과 정보공개청구를 하며 대응했다.

다행히도 법원은 1심 진행 중 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는 조정권고 결정을 했다. 공단은 법원의 조정 권고를 수용했다. 망인이 돌아가신 때로부터 무려 11년 만에 산재로 인정된 것이다. 유족과 나눈 이야기처럼, 마치 망인이 하늘에서 도와준 듯이 사건이 마무리됐다. 기쁘다는 마음보다는 다행이라는 마음뿐이었다.

정말 다행이지만, 되돌아보면 안타까운 점들이 많다. 공단이 조정권고 결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적절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공단이 최초 신청 단계에서 소멸시효라는 형식적인 법리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대신에 산재보험법이 노동자 또는 유족의 생활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산재를 인정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망인의 질병은 벤젠 노출로 인한 것이었는데, 유족은 최초 신청시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과로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질병이 과로로 발병한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판단했다. 망인의 질병과 같이 특이질환의 경우 공단이 신청이유에 국한하지 않고 직권으로 조사해 인과관계를 살필 필요가 있다. 피재 노동자 또는 유족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등에게 무료로 자문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다면, 업무상질병임에도 주장의 방향이 달라 불인정되는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유족은 최초 신청 단계에서 노무사나 변호사의 자문을 받지 못했다. 피재 노동자 또는 유족이 무료로 노무사나 변호사의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 유족은 산업안전 문제에 능통한 활동가의 적극적인 제안과 도움 덕분에 산재를 인정받게 됐다. 이러한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억울함을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도움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이 힘들게 살았고, 힘들게 살아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보완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김성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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