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한국노총 교육선전실장

20대 초반에 어찌어찌해서 김호철 선배와 같이 일한 적이 있었다. 선배는 다들 잘 아는 <파업가> <단결투쟁가> <희망의 노래> <포장마차> <잘린 손가락> <꽃다지> 등 수많은 노동가를 작곡한 바로 그 ‘김호철’ 이다. 선배는 서울 사당동에 있는 가정집을 사무실로 쓰면서 ‘노동의소리’라는 인터넷방송을 운영했다. 그런 유명한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할 때였다.

그때 선배 옆에 젊은 아내가 있었다. 대학 노래패 출신이었던 그는 너무 예뻤고, 노래도 잘했다. 그는 원칙적인 사람이었다. 김호철 선배보다 더 그랬던 것 같다. 한번은 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린이 학습지교사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설마 거길 떨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 보니 면접 때 노조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돈 벌러 간 것이니 적당히 둘러대도 됐을 것을 원칙적으로 대답해서 기어코 떨어지고 왔다. 그의 이름이 ‘황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호철 선배는 형편이 좋지 않다. 알려진 노동가를 그렇게 많이 작곡했지만 저작권료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근근이 노동가를 모아서 음반 만들어 팔아 번 돈이 거의 유일한 수입이다. 이후에는 아마 그런 기획음반도 만들지 않기로 노동문예쪽에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이 둘을 키우며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노래를 계속 만들었지만 돈이 되는 음악은 아니었고, 그 와중에 장애인들에게 악기 가르치는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노동의소리에서 1년쯤 버티다가 먹고살아야 해서 그만뒀다. 그 뒤에 노조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고, 선배 부부는 계속 그때처럼 살았다. 달라진 것은 황현 선배가 언제부터인가 다시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판 문예일꾼들이 노래를 부르고 받는 돈은 정말 차비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난 안다. 돈이 없는 노조가 투쟁하는 일이 많아서 그마저 못 받을 때도 있다. 여유 있는 노조들이 연대하면 좋겠지만, 그런 노조들은 행사 때 노동가수들을 부르기보다는 훨씬 더 많은 돈을 주고 유명 연예인들을 섭외한다. 어찌 됐든 그는 정말 열심히 노래로 연대했다. 나는 멀찍이 서서 ‘저 선배는 늙지도 않네’ 생각하면서 바라보곤 했다.

그랬던 그가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그가 걱정됐다. 돈 걱정 하고 있을 호철 선배도 걱정됐다. 다행히 가수 박준·지민주·연영석, 작곡가 윤민석 등 여러분들이 모금을 해서 첫 수술비는 마련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병은 생각보다 깊다고 한다. 투병 생활이 시작됐다.

고맙게도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있다. 문화노동자들이 28일 오후 7시30분 홍대 클럽 '빵'에서 나눔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6월쯤 작은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집회 현장에서, 투쟁 현장에서 우리에게 힘을 줬던 노래. 단결투쟁가와 파업가를 한 번이라도 불러 본 당신이라면 그 노래를 만들고 불러 줬던 김호철과 황현에게 힘을 보태 줬으면 좋겠다. 언니의 완쾌를 두 손 모아 빈다.

* 계좌번호 : 우리은행 749-124301-02-001(황현)

황현(왼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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