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금년 5월5일이 탄신 200주년이었던 카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저작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하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꿈속의 악마처럼,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른다.”

이 말처럼 1945년 8월 일제로부터의 해방 후 이 땅에 들어선 미군정의 망령이 지금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올해 5월1일 세계노동절에 민주노총은 노동법 개정을 하반기 주요 투쟁과제로 선포했다. 민주노총 시대에 들어와서 1996~97년 노동자 총파업 이후로는 단지 노동법 개악 반대투쟁만 있었지 노동법 개정투쟁은 사실상 실종됐다. 민주노동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인 복수노조 금지 조항(노조법 3조5호)이 총연합단체에 한해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 독소조항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4·19 혁명 이후 탄생한 민주적 노동조합 총연합단체인 한국노련을 강제로 해체시키고 비밀경찰기관인 중앙정보부를 통해 하향식으로 한국노총을 만들면서 생겨났다. 이 조항은 중정이 만들고 중정에 의해 통제되는 한국노총 외의 다른 노동조합총연합단체가 등장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었다. 정권은 이런 유일 관제어용노총 체제를 통해 일체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을 압살해 왔다. 따라서 80~90년대 노동법 개정투쟁이 해당 조항 폐지에 초점을 둔 것은 나름 타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87년 정치체제가 그렇듯이 이 노동법 개정도 군사독재하 노동체제에 일정한 수술을 가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마치 정치에서는 체육관선거 독재통치를 해체하고, 경제에서는 관치경제를 해체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던 것처럼 관제어용 유일노총체제를 해체하는 것이 최대 목표로 간주됐다. 사실 그것들은 최소 목표에 불과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말로 유명해진 어느 교수가 있지만, 그 민주화는 “노동자·민중이 나라와 사회의 주인이 된다”는 글자 그대로 의미에서의 민주화는 아니었다. 이 체제는 “민주주의 없는 민주화” 체제로 불러야 합당하다.

노동자가 나라와 사회의 주인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정치영역에서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96~97년 노동법 개정으로 쟁취한 노동법에서도 노동조합을 경제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구속하는 조항은 무비판적으로 계승됐다. 대신 노동조합이 제도권 선거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허용했다. 시민단체에도 허용하지 않던 이런 특권을 노동조합에게만 허용한 것은 노동조합의 목적을 경제적 지위 향상으로 제한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사실 노동운동 내의 우익기회주의자들은 90년대 초부터 노동조합은 경제투쟁 조직이고 정치투쟁 조직은 정당이라는 양날개론을 펴면서 이런 상태를 노동운동 모델로 추구했다.

바로 이 조항이 87년 체제하 노동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했다.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복수노조 금지 조항이 그러했듯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정의)는 4호에서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정치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요구하고 투쟁하면 노동조합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며 따라서 불법이 된다. 이런 족쇄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정치투쟁을 일상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민주노조들은 자신의 규약에 “조합원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어 놓고 있다. 그러나 노조법은 이것을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마땅히 악법을 철폐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현재 노동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의 경제주의다. 비록 정치적 의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당이나 선거에 당비나 후원금을 내고 민주노총 후보나 진보후보에게 표를 주지만 그것은 경제적 목적을 위한 하위수단으로서의 정치에 불과한 “정치적 경제주의”일 따름이다.

이 족쇄는 미군정이 채웠다. 미군정은 46년 7월23일 ‘노동문제에 관한 공공정책 선언’이라는 이름의 법령 97호를 발표했다. 법령에 따라 노동부가 만들어지고, 노동부는 47년 5월 말 두 건의 통첩을 시달했다. 흔히 ‘노동부 방침’으로 알려져 있다.

"① 방침의 목적 : 노동운동이 ‘정치나 사상선전의 도구’에서 벗어나 ‘조합 본연의 운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② 노동조합의 요건 1) 조합의 목적을 순수한 경제활동에만 제한한다. 미군정 노동정책이 목적으로 한 것은 첫째 조합의 정치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함으로써 (…) 사회주의 지향의 전평을 배제하며, 둘째 경제적 조합주의 중심의 새로운 노동조합을 육성하는 것이었다.”(<한국노동운동사 : 미군정기 노동관계와 노동운동 1945~1948> 박영기·김정한)

이런 전통에 따라 53년 제정된 노동조합법은 1조에 “근로자의 자유로운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며,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유지함으로써 그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했다(<한국노동운동사 해방후 편)> 김낙중).

그릇되고 낡은 전통이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의식적으로까지 현시대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노동운동가들 자신의 머리까지도.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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