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저는 매년 5월15일 스승의 날이 오면 심정이 복잡해집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제가 가르쳤던 제자들이 고마운 인사 연락을 해 오고 꽃바구니를 보내는가 하면 불러내서 맛있는 걸 사 주기도 하는데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직업이 교사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그 대가로 적정한 액수의 급료도 받았습니다. 저는 교사라는 직업이 제 적성에 맞았습니다. 참 재미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하는 일에 아주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직업으로서의 제 교사의 삶에 최선을 다한 거지, 누구에게 특별히 인정받거나 칭찬받으려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교사’와 ‘선생’ 그리고 ‘스승’이라는 말이 혼재해 쓰이다 보니 여러 가지 혼란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스승이란 말은 <훈몽자회>에 보면 불교의 중을 스승이라 하고 있고 지금도 중을 높여 부르는 말로 스님이란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곧 ‘사(師)님’이었고 스승은 ‘사승(師僧)’에서 온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일찍이 불교가 왕성했던 고려시대부터 쓰던 말인데, 사승이 음운변화를 거쳐 스승이 된 것이랍니다. 그런데 오늘날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교사라는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정신적인 선생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고 봐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학교에서 스승의 날 행사를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행사 위주로 진행됨에 따라 교사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절차나 의무감으로, 마치 억지로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어 교사도 학생도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교사의 날’을 두고 교사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직업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같이 학교에서 교사로 수업을 통해 국어지식을 가르치고, 담임을 하며 같이 놀아 주고, 상담을 통해 얘기나 들어 준 인연일 뿐인데 스승으로 대접하며 매년 잊지 않고 찾아 주는 것은 너무 과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받아야 할 대접을 이미 다 받았는데 졸업 후까지 잊지 않고 찾아 주는 제자들은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그렇게 함으로 서로 힘이 되고 기쁘고 행복해지는 것이니, 참으로 신나고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염치없이 스승의 날이라고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오면, 최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그런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확인시켜 줍니다. 사무실로 꽃을 보내는 친구들도 있는데, 같이 근무하는 다른 분들께 민망스럽기는 하지만 그 마음을 생각하며 그 친구 얼굴 보듯 바라보며 복을 빌어 줍니다. 사실 같이 밥 먹자는 친구들이 가장 반갑죠. 모든 걸 떠나 다시 만나 반가운 얼굴 보며, 그동안 살아온 얘기나 살아갈 고민을 함께하는 즐거움이 너무 크거든요. 일흔 나이쯤 되니까 더욱 그렇습니다.

저에게도 소중한 스승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참스승이신 백기완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저를 항상 일깨우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말씀으로도 그렇게 하시지만, 온몸 온 삶을 통해 저에게 보여 주심으로 제 삶의 이정표나 등대가 돼 주고 계십니다. 스승의 날이면 찾아뵙곤 했는데, 제가 가면 언제나 투쟁 현장의 노동자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지만 정성과 존경의 마음으로 가슴에 달아 드립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미리 준비하신 시대의 증언으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흥에 겨울 때는 노랫가락까지 섞어 쩌렁쩌렁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주십니다. 통일문제연구소 선생님 방에 가득 모인 우리는, 큰 스승의 존재 그 자체로 뿌듯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큰 수술을 하시고 겨우 퇴원하셔서 댁에서 가료 중이신데, 면회도 어려운 형편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어쩔 줄 몰라 허둥대고 있는데 한 친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스승의 날을 축하하고 쾌유를 비는 꽃다발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동참했습니다. 저도 함께했습니다.

“선생님, 아니 시대의 스승님! 부디 벌떡 일어나셔서 우리 곁에 오래 계셔 주십시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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