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경제의 디지털화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플랫폼에 기반을 둔 취업 형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일하는 방식이나 노동 기준이 변하는 상황에서 공장 노동자 위주의 종속성에 기초한 현행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경제의 디지털화 시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노동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에는 노사나 전문가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각론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노동계는 디지털화가 노동시장 유연화로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적 보호장치를 확대·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특수고용 노동자'로 불리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저소득과 고용불안에 내몰리는 처지다.

반면 재계는 노동유연화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폭적인 규제완화가 그것이다. 전문가 의견도 엇갈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법은 경제법의 일부여야 한다"며 노동법 규제 혁신을 주장하는가 하면 "노동법조차 적용받지 못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지순 "노동법 규제 혁신해야"

㈔노사공포럼(수석공동대표 유용태) 주최로 14일 오후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과 신 노동질서' 토론회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주체들의 서로 다른 입장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4차 산업혁명과 노동법의 과제'를 발제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산업사회의 가능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다"며 "종속성에 기초한 과거 노동법의 전제조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노동법은 경제법의 일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법은 IT법·경쟁법 등과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 조직과 내용을 혁신적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인프라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노동법과 노동제도는 산업구조·경제활동과 조화를 이루는 전체 국민경제 질서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근로기준법상 '1일 8시간' 상한제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유럽연합 입법지침은 1주 48시간이란 최대 상한 근로시간의 범위만을 규제하고 있을 뿐 1일 근로시간 상한을 규제하고 있지 않다"며 "대신 1일(24시간) 내 최소 연속 11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최근 노동계를 중심으로 1일 최고휴식시간제를 도입하자는 요구가 늘고 있는데, 엄격한 근로시간 상한과 최소휴식시간제가 함께 작동하는 규제방식은 시간적으로 유연한 업무수행을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초과근로시간을 적립하고, 이를 휴식이나 금전으로 보상받는 독일식 근로시간계좌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박명준 "노동자 보호방안 재구성해야"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토론자로 나와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라 노동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에서 큰 차이가 있다"며 "노동법이 경제법의 일부여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1일 8시간 노동시간 한도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급하다"며 "멕시코 다음으로 긴 우리나라 장시간 노동을 이제 막 법·제도를 개정해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고, 유럽국가 평균수준으로 가려면 상당 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시간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유럽(유럽연합 입법지침)처럼 가자는 건 조기축구회 선수들에게 분데스리가를 모방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박명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근로기준법 체제가 시대적 한계를 다했다는 지적은 동의한다"면서도 "기업별노조 체제 속에서 발생한 이해대변의 협소함을 근기법 자체의 협소함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는 "근기법 체제가 경직됐지만 그나마 노동자들을 보호해 왔고, 근기법조차 적용되지 못하거나 지켜지지 않은 측면이 더 크다"며 "그동안 노동법에서 배제돼 왔던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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