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이제는 전 국민이 태움이라는 단어를 압니다. 원래는 간호사들의 은어였죠. 저도 농담처럼 때론 습관처럼 썼어요. 신규간호사보고 ‘쟤가 덜 타서 그렇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그 뜻을 알고 나서 저도 놀랐습니다. 우리 아이가 TV를 보다가 ‘엄마 병원도 그래?’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움 문화는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태움이라는 말이 논란이 된 후 병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세요?”

인력부족이 만든 태움, 병동 떠나는 간호사들

국제간호사의 날(5월12일)을 앞둔 10일 오후 보건의료노조가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2018년 대한민국 간호사들이 간호사를 말한다’는 이름으로 열린 ‘노동존중 병원을 위한 과제 모색 토론회’다. 현장 간호사들이 나와 병원 노동환경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ㄱ사립대병원에서 일하는 공지현 간호사는 “태움 문화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뒤 신규간호사 교육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공 간호사는 “예전에는 신규간호사가 독립해 환자를 배정받아도 초기에 선임간호사들이 처방 내용이나 투약 상황 등을 같이 봐줬는데 요즘엔 그렇게 안 한다”며 “오지랖이 되고 나쁜 간호사가 되기 때문에 아예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인력부족에서 비롯된 태움이 간호사 모두를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들었다”며 “중간 연차 간호사들이 신규간호사를 교육하는데 이들이 사직하거나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로 전환해 병동을 떠나면서 저연차 간호사 비중이 50%를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노조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54개 병원 간호사 7천703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를 보면 5년차 미만 간호사 비중이 절반을 넘는 곳은 고대의료원(50.3%)·SRC병원(67%)·공주의료원(58%)·양산부산대병원(52%)·부산대병원(54.5%)·서남병원(75.1%)·서울시동부병원(55.2%)·서울시북부병원(64.4%)·울산병원(55.5%)·원주연세의료원(53.11%)·을지대병원(66%)·청주의료원(54%) 등이다.

숙련된 간호사의 이탈은 환자 안전에 위협이 된다. 노조가 "의료기관 인력문제는 환자 안전 문제"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당장 제정하자"

ㄴ사립대병원 13년차 간호사 홍슬아씨는 "교대근무 탓에 수면장애를 10년 넘게 앓고 있고 지금까지 병원식당 식대가 한 달에 2만원을 넘긴 적 없을 정도로 제때 먹지도 못한다"며 "먹고 자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조차 누리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나영명 노조 기획실장은 “간호사들이 스스로를 백의천사가 아니라 (일당)백의 전사라고 부른다”며 “병원 노동환경 문제는 기·승·전·인력이라고 할 정도로, 양질의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 실장은 “열악한 의료기관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을 당장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해당 법안은 보건의료 인력지원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을 명시하고,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은 “인력과 관련한 보건의료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당장 수가 인상이 어렵다면 정부가 직접 인건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해서라도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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