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삼성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영업비밀·국가핵심기술이 담겨 있다는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요 정보가 있더라도 안정성을 사업주가 증명하거나 산재 우선승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일터 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가 지난 6일 전문의·전공의 116명의 연서명과 함께 내놓은 성명에 담긴 내용이다.

올해 2월 대전고법은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숨진 노동자의 유족이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삼성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삼성 요청을 받아들여 "국가핵심기술이 들어 있다"고 판정하면서 보고서 공개가 미뤄지고 있다.

의사회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생산설비의 모델명·숫자·배치·공정의 흐름 등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지 않고 △2010년 이후 공정도가 빠져 있으며 △화학물질의 혼합 비율·공정 조건 등 생산기술이 적시돼 있지 않다. 의사회는 "어떤 정보를 영업비밀로 인정하려면 경쟁사가 갖지 않는 고유 기술이 담긴 정보여야 하고 정보유출로 회사 이익에 실질적인 손실이 추정돼야 한다"며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수준의 정보가 이런 요건을 만족시킨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영업비밀이나 국가핵심기술이 담긴 문서라도 사용자가 위험성 물질에 대해 스스로 안전을 증명하거나 비공개를 고수하면 산재가 승인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의사회는 “기밀로 유지할 경우 노동자나 시민 안전보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기업 스스로 증명하고, 앞으로 사업주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련 정보 제공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면 해당 노동자들의 산재를 승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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