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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국가와 정상기업
   
▲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전태일이 분신항거하기 1년 전인 1969년 11월1일 그는 ‘태일피복 대표 전태일’이라는 이름으로 쓴 편지 형식의 글 한 편을 일기장에 남깁니다. 그가 꿈꾸며 구체화하려 했던 ‘모범기업’에 대한 처음 구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지면을 빌리어 인사 올리게 됨을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하십시오. 본사는 금번 평화시장 피복계에 일대 센세이숀(센세이션)을 일으킨 태일피복입니다. 타사와 달리 철저한 품질관리와 생산원가를 고객 여러분에게 솔직히 알려드리고 생산과정을 소개하여 드립니다. 가격은 고객 여러분께서 생산원가를 뺀 얼마간의 이익을 붙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본사의 이익은 기업주와 종업원이 공평하게 분배합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분들인 종업원을 건강 보호로부터 교육에까지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본사의 모토는 정직입니다. 종업원을 기업주와 하등의 차이도 없이 대우하고도, 사업을 해 나갈 수 있다는 기본을 보이기 위한 기업체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양심적이며 실용적인 상품은 논할 것도 없으며, 모든 기업체의 모범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끝으로 본사를 좀 더 이해 많으시기를 바라고, 많은 충고와 사랑이 있으시기를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기업의 투명성을 위해 생산원가나 생산과정을 공개한다거나, 소비자가 정하는 적정한 이윤이나 이익을 기업주와 종업원이 공평하게 분배한다거나, 종업원 건강보호와 교육 보장 등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이상적인 사회적기업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모범기업의 핵심이 정직과 차별하지 않는 것이란 데 이르러서는 숙연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면서 요즘 터져 나오는 우리나라 재벌들 행태가 떠오릅니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만 하더라도 수백 배에 이르는 임원과 종업원의 임금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공장 안에서 작업 중 발생한 질병의 원인규명을 방해하기 위해 작업환경이나 생산과정 등을 밝히지 않는 행태는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권력과 결탁하기 위해 뇌물을 준다거나, 광고를 빌미로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이미 관행화돼 있고, 헌법으로 보장돼 있는 노동조합마저 결성하지 못하게 하는 불법적 무노조정책을 무슨 기업의 이념인 것처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찌 삼성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의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경영행태는 조금씩 차이는 있을망정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항공 오너 경영인들의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파렴치한 갑질 행동들도, 결국 우리나라 재벌사회에서 당당하게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독버섯에 다름 아닙니다.

전태일은 1970년 1월4일 일기장에 ‘모범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서를 남깁니다. 자본금 3천만원에 직원 184명으로 3개 공장과 7개의 가계로 이뤄진 이 기업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당한 세금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도 제품계통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제인에게 입증시키고, 사회의 여러 악 여건 속에 무성의하게 방치된 어린 동심을 하루 한 시라도 빨리 구출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나는 이 사업을 위하여 보잘것없는, 물질적으로 본다면 1달러의 값도 없는 나의 전부를 여기에 바칠 것이다.”

결국 자기 눈을 팔아서라도 마련해 보고자 했던, 자본금 3천만원을 구하지 못해 물거품이 돼 버렸지만, 지금 이 시간도 우리나라 재벌을 비롯한 경제인들에게 정곡을 찌르는 울림으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부인인 리설주 여사를 회담 프로그램에 참석시킴으로 비로소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습니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정상입니다.

우리나라 재벌이나 기업들도 부디 이제는 정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당한 세금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정도라도 제대로 하면 정상기업입니다. 가장 열악한 조건 속에서 제안한 전태일의 ‘모범기업’도 어찌 보면 기업 정상화에 대한 간절한 요구였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이수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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