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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노동자운동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 관련 토론이 활발하다. 세계 주요 언론에 마르크스에 관한 기사가 여럿 실렸고,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책들이 최근 여럿 출판됐다. 마르크스에 관한 대부분의 쟁점은 그의 사상이 현재도 유효한지 여부다. 마르크스 사상은 19세기 맥락에서만 유효하다는 주장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이 맞붙고 있다. 나는 후자 입장을 지지한다. 지난해 칼럼에서도 썼듯, 그의 노동가치론·화폐론·축적법칙 등은 현재도 훌륭한 설명력을 갖는다.<본지 2017년 9월21일자 19면 ‘마르크스 자본론의 현재성’ 참조>

마르크스 사상 중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은 그의 과학적 법칙들만은 아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그의 노동자운동관이다. 마르크스는 대안세계(그가 공산주의라고 불렀던 것)가 어떤 청사진이 아니라 노동자운동 발전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한 대안세계는 노동하는 시민 스스로가 생산주체가 되는 공동체였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가상의 시민으로서 법인격인 기업에 의해 조직되며(마르크스 당시에는 자본가로 표현됐다), 소수의 자산 소유자와 경영자들만이 생산 영역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된다. 다수 시민은 자신의 노동능력이 구매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다. 우리나라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은 기업이 생산의 주체며, 기업 내 모든 권력은 소유자와 경영자로부터 나온다”고 써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시민주권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노동하는 시민 모두가 집단적 경영자·소유자가 되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생산 영역에서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시민의 온전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마르크스의 이런 대안세계관에서 보면 생산자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 같은 노동하는 시민의 자주적 조직들은 시민 스스로를 사회적 경영자로 성장시키는 교육기관이다. 수만 개의 기업, 수천만 명의 시민이 분업을 통해 생산해 내는 수십만 가지의 생산물들은 의지만으로 생산될 수 없다. 대단한 지적 능력과 세밀한 사회적 협력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노동능력을 판매하는 것에만 익숙해서는 결코 이런 생산을 조직해 낼 수 없다. 시민이 생산주체가 되려면 그만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생산자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은 경영과 협력의 능력을 키우는 학교이며, 그런 시민의 집단적 능력만큼 대안세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대안세계는 곧 노동자운동의 성장-즉 시민의 집단적 경영능력-만큼 이뤄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이런 점에서 국유화·계획경제 같은 청사진들은 사실 마르크스의 대안세계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노동자운동관은 우리나라의 현재 노동운동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바로 1987년 노동운동의 유산인 “성장을 전제로 한 쟁취” 전략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사점이다.

마르크스의 축적법칙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무한성장 체제가 아니다. 최근 세계경제와 우리나라의 장기불황 전망은 마르크스가 말했던 자본주의적 한계를 잘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경제공동체가 이런 위기를 벗어나려면 산업혁명 같은 기술과 제도의 대대적 혁신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를 변혁해 대안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4차 산업혁명론이 등장해 전자의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현실 경제는 산업혁명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전반적인 생산성 저하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중화학공업 전반의 위기가 심각하다. 막연하게 산업혁명을 기다리기보다는 대안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때다.

이런 조건에서 마르크스가 제안하는 노동자운동은 “대안을 위한 단결” 전략이다. 노동자운동이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을 추진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전략 말이다. “성장을 전제로 한 쟁취” 전략은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조건에서 실현될 수 없다. 노동자 간 분배를 둘러싼 노노갈등만 부추긴다.

“대안을 위한 단결” 전략에서는 임금의 인상·인하가 급진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정부와 사측에 분노를 터뜨리며 기업과 정부에 대안을 내놓으라고 규탄하는 것이 운동의 목표가 돼서도 안 된다. 노동자운동은 노동자 내부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 집단적 노력으로 어떻게든 현실 가능한 대안을 찾아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최근 그야말로 ‘노답’ 상황에서 갖가지 갈등이 발생한 금호타이어 매각사태, 한국지엠 부도 협박사태, 조선업 구조조정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보여 줬다.

5월5일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다. 나는 마르크스가 우리 노동자운동에 상당히 많은 통찰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이왕지사 마르크스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한 번쯤 마르크스의 과학과 사상을 토론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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