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노동자추천이사제 도입을 권고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올해 3월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안이 부결된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회사들은 노동이사제 도입이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의사결정 속도를 늦춰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노동자에게 이사추천 형태로 경영참여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회사 지배원리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일 오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가 내놓은 논리다. 토론회는 금융공공성 및 금융민주화를 위한 금융노동자공동투쟁본부가 출범식 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융노조·사무금융노조 주최로 열렸다.

“노동자는 주주이자 채권자, 경영참여 당연”

전성인 교수는 “금융권에서 회사 성과와 이해관계가 가장 잘 연동되는 당사자는 노동자”라며 “노동자에게 지배권을 배분하는 것이 회사에도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회사 이익은 고정보수 수령자와 잔여적 청구권자에게 분배된다. 잔여적 청구권자는 주주들이다.

회사가 정상 상태일 경우에는 이윤이 많을수록 받아 가는 몫이 많아지는 잔여적 청구권자에게 지배권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들이 회사의 이해관계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반면 회사가 부도상태일 때는 잔여적 청구권자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 이때는 회사 이윤이 없어도 일정 보수를 받는 임금채권 보유자 등 고정보수 수령자에게 지배권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회사 재무성과와 고정보수 수령자의 이해가 연동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논리에 비춰 봤을 때 고정급과 동시에 성과급을 받는 대다수 금융권 노동자들은 회사가 부도상태일 때든, 정상상태일 때든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정상상태일 때 성과급 수령을 위해 회사 발전을 염원하고, 부도상태일 때는 무담보 채권인 고정급(임금채권) 보전을 위해 회사의 정상화를 염원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회사 이해관계 당사자 중 노동자와 같이 주주와 채권자의 속성을 동시에 갖는 당사자는 없다”며 “노동자에게 이사추천 형태로 경영참여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회사 지배원리에 가장 정확히 부합한다”고 밝혔다.

정부 “공공기관 도입 스케줄 맞춰 금융권 노동이사 도입”

토론회에서는 상법 개정을 통한 노동이사 제도화 방안이 제시됐다. 우리사주조합에 이사 추천권한을 주는 내용을 포함하는 식이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에 이를 반영하는 방법도 있다.

정부는 노동이사제 도입 의지를 밝혔다. 신진창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조만간 금융행정혁신위 (노동자추천이사제 도입) 권고를 금융감독원과 함께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 과장은 도입 시기와 관련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적용을 받는 금융공공기관은 정부 전체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스케줄에 맞춰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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