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80년 동안 철옹성처럼 굳건하던 삼성 무노조 경영이 무너졌다.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 노동자들이 삼성그룹이 금과옥조처럼 지켜 온 무노조 경영을 무너뜨린 주역이다. 최종범 열사와 염호석 열사를 가슴에 묻고 재기발랄한 ‘삼바운동’(삼성을 바꾸자, 삶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과 함께 민주노조 사수투쟁을 끈질기게 벌인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간부들과 조합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밑거름이 돼 가능한 결과였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 과정에서도 이재용 부회장 구속과 재벌적폐 청산을 외치며 당차게 싸웠다. 희망연대노조와 함께 재벌사업장 간접고용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앞장서면서 8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집한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에서도 활동했다. ‘최저임금 1만원 지금 당장’ 운동에도 빠짐없이 결합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 노동자들은 사업장 안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사회 영역과 소통하며 연대의 외연을 확장했다. 이명박 관련 다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조탄압 문건이 대거 발견돼 이렇게 느닷없이 무노조 경영이 허물어질 줄 몰랐지만, 헌법기본권인 노조가 삼성에도 안착될 날을 확신하며 투쟁했다. “아무리 지랄해도 노조는 건재하다”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구호처럼 기적같이 온 삼성 무노조 경영 몰락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다. 에버랜드를 비롯해 삼성자본의 악랄한 전방위적인 노조탄압에 맞서 온몸으로 싸운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과 반올림을 중심으로 한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사망자 유족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무노조 삼성의 종말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고용 근절 및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삼성노동인권지킴이를 비롯해 무노조 삼성 허물기에 줄기차게 연대한 시민사회 힘도 컸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진전 속에서 빠르게 확대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에 비해 민간부문 노조 조직화는 더뎠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처럼 노동법은 물론이고 헌법마저 멈춰 세운다는 재벌자본의 노조혐오 영향이 컸다. 재벌 중심의 기형적인 사회·경제구조를 뒤바꾸자는 촛불민심이 거세게 타올랐지만, 재벌적폐 청산은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무엇보다 공동체가 아닌 약육강식 정글로 변질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면 재벌자본을 제어하며 우리 사회 균형추가 돼야 할 노조의 사회적 힘이 관건이다. 대표적 지표가 노조 조직률이다. 10%에 불과한 전체 노조 조직률도 문제지만, 2% 내외로 고착화한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낯 뜨거운 수준이다. 공공부문에선 물꼬가 트였지만, 여전히 재벌이 슈퍼갑으로 군림하는 민간부문에선 촛불과 문재인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답답한 형국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발표됐고,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간부문에도 재벌사업장을 중심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노조 조직화 흐름이 생기고 있다.

유무선 통신망 유지·보수·관리업무를 책임지는 LG유플러스 수탁사(ENP)에도 노조가 만들어져 벌써 조합원이 1천명에 육박한다. 기존 LG유플러스 지부 조합원도 배가됐다. 최대 통신업체인 KT에서도 비정규직 조직화가 진전되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분기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도처에 생겨나고 있다. 헌법기본권임에도 노동조합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비정규 노동자에게 노조 결성이 부담스러운 첫 번째 이유는 불이익 우려 때문이다. 노조 결성이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된다면 노조를 만들지 않을 비정규 노동자는 드물다. 영세한 규모의 사업장에서는 들인 노력에 비해 기대할 만한 성과가 크지 않으므로 노조 결성이 힘겹다. 현재처럼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압도적인 한국 사회에서 노조 결성은 평범한 노동자 입장에선 엄두도 내기 어렵다. 결국 대표적인 기득권층이면서 지불능력이 있고 노조 결성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재벌사업장에서 민간부문 변화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불이익에 대한 예단과 우려만 걷어 내더라도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삼성그룹을 비롯한 재벌사업장 노조 결성 흐름에 주목하는 이유다.

극적인 종전선언과 완전한 비핵화 합의를 명시한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봄바람이 넘실대고 있다. 이참에 무권리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새봄이 올 수 있을까. 최저임금 1만원 조기 달성을 위해서도 재벌적폐 청산이 최우선 과제인 만큼 재벌사업장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확대는 2018년판 노동자 대투쟁의 서막이 될 것이다. 인간다운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시대 요구다. 노동 3권 지금 당장, 노조할 권리 지금 당장. 때가 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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