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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무성했던 '기업살인 처벌법'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기업살인 처벌법’을 거론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 서 의원 성향을 고려하면 의외의 법안 발의였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상황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여 지난 2014년 5월14일의 일이다. 서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이자 새누리당 맏형을 자임했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방송에 나와 악어의 눈물을 흘릴 때 서 의원도 이를 지켜봤다. 서 의원은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과 관련해 “사고 원인자 및 비호세력에 대해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행보가 박 전 대통령을 향한 것인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발의할 법안명은 ‘세월호 참사 참회 특별법’이었다.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관련 기업과 책임자에게 민·형사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었다. 기업살인 처벌법을 먼저 발의한 의원은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다. 김선동 전 의원은 “국회는 영국 사례를 차용한 서청원 의원의 기업살인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환영했다. 기업살인법은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공통과제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기업살인 처벌법 제정은커녕 그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다. 두 의원 법안은 폐기됐다. 반면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는 여전하다. 지난 25일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 캠페인단’ 발표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5월1일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한 이들 대다수가 하청 노동자였다. 살인기업에 포함된 7개 기업 사망사고자 37명 모두 하청 노동자다. 위험작업이 외주화되면서 하청 노동자 목숨을 앗아 가는 형국이다. 중대재해임에도 안전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원청업체 대표는 형사입건조차 되지 않는다. 검찰과 사법부는 안전담당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기업주 또는 소유주에 대한 처벌규정이 미미해서다.

산업안전보건법 23조(안전조치)에 따르면 사업주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사업주가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형법은 법인 사업주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 양벌 규정에 따라 법인에 벌금형만 부과할 뿐이다. 이처럼 중대재해가 일어나도 처벌할 수 있는 법 규정이 미흡하다. 19대 국회에서 서청원 의원이 형법 개정을, 김선동 의원이 기업살인 처벌법 제정을 추진한 이유다.

기업살인 처벌법은 철 지난 법안이 아니다. 영국이 선례다. 영국 기업살인법의 핵심은 안전조치에 소홀한 기업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든 것이다. 2008년 기업살인법이 시행된 후 2011년 산재 사망사고가 25% 줄어들었다. 1명이 사망하더라도 기업주에게 최고 7억원의 벌금형을 부과한다. 영국이 주목받는 이유는 높은 벌금액수 때문이 아니다. 기업살인법 제정을 통해 인식 변화를 꾀했다. 산재사고를 범죄로 보지 않는 문화를 뜯어고쳤다.

조선업과 건설업이 해를 걸러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되는 이유가 있다. 원·하청 간 다단계 하도급이 집중되는 산업이라서다. 하청 노동자들이 수난을 당하는 이유는 사고예방 사각지대에 있어서다. 원청업체는 위험작업을 하는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이러니 산재 사망사고가 빈발한다.

조선업이든 건설업이든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려면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다단계 하도급을 제한하는 방안도 있지만 하청 노동자 죽음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 노동계와 공동캠페인단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기업살인 처벌법의 연장선이다. 20대 국회가 나서야 한다. 산재 사망사고도 살인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에 앞장서야 한다.

박성국 논설위원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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