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연일 삼성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올해 2월 검찰이 삼성그룹을 압수수색하면서 ‘발견’한 6천건에 이르는 노조파괴 문건부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 직접고용 발표, 그리고 고용노동부의 삼성 면죄부 주기 행태를 폭로하는 보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보도를 접하며 30년이 넘는 삼성의 노조파괴 전략이 그룹 전체적으로 얼마나 치밀하게 짜여 있으며, 총수 일가의 사익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 전 영역에 어떻게 마수를 뻗치고 있으며, 그 과정에 최소한의 인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다시 한 번 진저리 치게 된다.

그런데 삼성의 행태보다 더 분노를 느끼게 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삼성의 불법·탈법행위를 묵인하고 면죄부를 줬던 정부 행태다. 2005년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삼성이 검찰에 지속적으로 뇌물을 주면서 관리해 왔다는 문건(삼성 X파일)을 폭로했을 때 당시 검찰에 대한 어떠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 같은 당 심상정 의원이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했을 때 검찰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삼성을 무혐의 처분했다. 노동부는 이 문건을 수사한 결과 "문건이 삼성그룹 내에서 작성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며 문건작성을 지시할 위치에 있는 피의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조직되면서 제기한 불법파견 의혹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근로감독 결과 적법도급"이라며 사측의 책임 회피를 도왔다. 심지어 노동부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 지표로 볼 수 있는 주요 사실을 삭제한 근로감독보고서 요약본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검찰과 노동부가 삼성그룹의 노조파괴 범죄를 은폐하는 데 적극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일들이 단지 삼성그룹이 정·관계에 광범위하게 뿌려 놓은 떡밥의 힘에 의해서만 생겨났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기업은 오너의 것”이고 “노동자의 권리 주장은 기업 경쟁력에 해가 된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본 우위·노동 적대적 의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부가 삼성전자서비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왜곡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보고서 전문에 삼성전자서비스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이유를 댄 것이나,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해 달라는 재해노동자의 청구를 직권으로 집행정지한 것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경영자의 이해가 노동자 생명이나 권리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될 필요가 있다는 믿음이 국가 전반에 만연해 있다.

최근 나라 전체를 들썩들썩하게 하는 제너럴 모터스(GM)의 철수 협박 과정에서도 이런 인식과 행태를 또다시 보게 된다. 국책연구기관과 산업은행조차 한국지엠의 경영상 핵심적인 문제는 지엠의 수탈과 비용전가 전략에 있음을 인정하고도, 결국 정부는 노조 양보가 사태 해결의 전제조건이라며 노조를 압박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동부는 올해 1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완료하고도 지엠과의 협상을 위해 결과 발표를 늦추고 있다고 한다. 이미 대법원이 2013년과 2016년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불법파견 사용을 인정한 바 있고,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끝낸 지 3개월이 지나 이미 결론이 나왔음에도 불법파견을 인정할 경우 직접고용 전환 비용을 모두 ‘부채’로 회계장부에 반영하겠다는 지엠의 협박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지엠의 민원을 받아 대법원에 통상임금 소송의 ‘적절한 처리’를 요구했던 박근혜 정부나 지엠의 막가파식 철수 협박에 노동자들의 일방적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문재인 정부나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노동의 권리보다 자본의 권리가 우선한다는 인식과 행태를 바꾸지 않는 한 오늘도 정부는 노동억압·노조파괴의 방조범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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