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어떤 물질을 이용해 어떤 완제품을 만드는지, 그 과정에서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은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되는지,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되는지 작업환경을 평가하는 것이 작업환경측정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특정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장 환경을 6개월에서 2년 주기로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은 산업재해를 신청한 노동자가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온전히 공개하라고 요구하자, 반도체 공정은 국가핵심기술이고 기술유출 위험이 있어 사용량·사용물질·공정도가 포함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제출할 수 없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 요구를 수용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나와 있는 공정도는 작업환경측정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측정 위치도다. 동그라미 네모 등으로 작업환경을 측정한 위치가 표시돼 있다. 이러한 측정위치를 표시하는 그림이 기업비밀이 될 수 있는지 객관적인 확인과 설명이 필요하다. 해당 공정이 국가핵심기술인 것과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항상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국가핵심기술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한 공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의 이름·사용량을 알 권리가 없는가? 특정 화학물질 사용량이나 사용한 화학물질이 기밀이라면 그것이 기밀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하고, 기밀로 인정받는다면 이를 기밀로 분류함으로써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설명해야 한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알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 그러려면 영업비밀을 특정해야 한다. 특정한 비밀이 노동자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기업이 증명해야 한다. 또한 화재·안전사고·폭발 위험이 있을 때 이들 물질의 양·특성을 알고 대처해야 할 안전보건전문가·소방전문가들과 어떻게 사전에 소통할지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작업환경측정은 외부업체에 의해 진행된다. 삼성이 아닌 다른 전문가에게 작업장 배치와 화학물질 내용·사용량 등을 이미 공개한 채 시작된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게 돼 있는 문서로 공무원들도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기업에서 사업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전체를 노동자들에게 공개하고 설명하고 있다. 기술유출이 우려된다면 작업환경측정기관 전문가에게 기술유출을 못하도록 한 조치 수준으로 정보를 제공받는 사람에게 요청하면 될 일이다.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면, 산재가 업무와 관련해 발생했는지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일한 현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업비밀이고, 국가핵심기술이라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관련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자신의 질병을 증명하라는 것인가?

영업비밀 물질이고 기술유출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화학물질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사업주가 입증책임을 지거나, 영업비밀 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모두 산재를 승인하는 것이 맞는 논리다. 현재 새롭게 개편되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노동자 알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검토되고 있다.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업비밀 물질 공개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기밀유출을 우려하며 일부 기업의 강력한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기업이 쉽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여러 지원을 해 줘야 한다. 그러나 그 쉬운 기업활동이라는 것이 노동자 안전과 건강을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경험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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