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부지방노동청의 삼성전자서비스 수시근로감독 보고서 전문(왼쪽)과 요약본.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여부를 가리는 소송 중에 주요 사실을 누락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부가 삼성의 불법파견 의혹을 눈감으려 편파적으로 근로감독했을 뿐 아니라 소송에서도 의도적으로 부실한 자료를 제출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영업상 비밀 포함됐다”며 반토막 보고서 제출

노동부는 2013년 6~8월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의혹과 관련해 수시근로감독을 한 결과 적법도급으로 판정해 노동계 반발을 샀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2013년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월 노동자 주장을 기각했다.

재판에도 노동부 손길이 미쳤다. 노동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노동부에 수시근로감독 보고서와 관련 자료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노동부(중부지방고용노동청)는 보고서 요약본만 재판부에 보냈다. “보고서 전문에 삼성전자서비스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이유를 댔다.

<매일노동뉴스>와 금속노조 법률원이 23일 입수한 근로감독 보고서 전문과 노동부가 법원에 제출한 요약본을 비교·분석했다. 보고서 전문은 표지와 목차를 제외하고 69페이지 분량인데, 요약본은 39페이지에 불과했다. 내용은 더욱 심각했다. 요약본은 불법파견 지표로 볼 수 있는 주요 사실들이 적지 않게 삭제된 상태였다. 영업비밀이라던 노동부 주장도 거짓이었다. 노동부가 보고서 전문을 멋대로 요약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에 불리한 내용을 감췄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사무실·기자재까지 원청이 지원

삼성전자서비스는 당시 169개 협력업체 사무실을 무상으로 임대해 줬다. 사무실 인테리어 비용, 책상·컴퓨터 같은 사무집기도 원청에서 부담했다. 별도 외근직 사무실이 필요한 96개 협력업체에는 원청이 월 4%의 보증금 이자와 월세를 지원했다.

요약본에서는 ‘사무실 인테리어 비용, 외근직 사무실에 대한 원청 지원’ 부분이 삭제됐다. 협력업체가 독자적인 기술력과 독립성을 가진 실체 있는 조직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의 기계·설비·기자재를 도급계약에 따라 무상제공하고 있다. 수리기사가 요청하면 자재담당 협력업체를 통해 자재가 지급된다. 그런데 성수기에는 수리기사가 원하는 곳으로 원청이 직접 보내 준다. 이를 위해 원·하청 직원끼리 단체대화방을 운영했다.

원·하청 직원들이 소통하면서 함께 업무수행을 했다면 원청이 하청노동자를 직접 지휘·감독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데, 요약본에서는 ‘성수기 원청의 직접 자재지원’ 부분이 빠졌다.

노동부는 보고서 전문과 요약본 모두에서 “사무실과 기계·설비·기자재의 부담주체와 지급은 도급계약에서 정해져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밝힐 정도로 민감하게 여겼다. 그럼에도 협력업체의 독립성·독자성이 없다는 구체적 증거를 가린 채 법원에 보낸 것이다.
 

원청이 채용 면접, 어려운 업무는 원·하청 함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는 수시채용을 할 때는 협력업체가 독자적으로, 정기채용을 할 때는 원·하청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채용한다는 것이 노동부 수시근로감독 결과다. 요약본과 전문 모두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런데 전문에는 수시채용와 관련해 “적성검사 후 원청지사 주관 자격취득시험(월 2회 응시)→서비스아카데미 2박3일 업무기본교육→채용 및 ID부여”라는 절차가 나온다. 원청이 노동자 채용에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정기채용 절차와 관련해서는 “3~4년 전부터 지사 내 하청 사장들이 면접”이라는 보고서 전문 문구가 눈에 띈다. 3~4년 전까지는 원청이 면접을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동부는 보고서 전문과 요약본에서 원청이 제공한 업무매뉴얼을 협력업체가 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하청에서 세부적인 수행방법은 독자적으로 결정한다”며 불법파견 요소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보고서 전문에는 “작업방법은 원청에서 제공하는 업무매뉴얼과 전산시스템에 따라 정형화돼 있음”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요약본에는 없다. “원청은 제품상의 문제점, 수리시 주의사항 등에 대해 전산시스템인 Single 및 K Zone을 통해 하청에 전달”이라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원청이 협력업체에 구속성 강한 지휘·명령을 하는 것으로 충분해 해석 가능한 내용이다.

원·하청 수리기사가 함께 일했다는 정황이 노동부 보고서 전문에는 담겼지만 요약본에서는 사라졌다. 요약본에는 “하청 수리기사가 처리할 수 없는 난수리 발생시 원청의 헬프 데스크에 연락해 직영 수리기사의 수리 노하우 등의 도움을 받아 난수리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보고서 전문에는 “직영수리 기사가 하청 수리기사와 일정을 협의한 후 함께 난수리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원청에서 협력사 역량 인센티브 운영기준을 마련해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중부지방노동청은 보고서 전문과 요약본에서 “원청의 지휘·명령이 의문시되는 요소로 볼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하청이 독자적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하고 근태관리를 직접 하기 때문에 지휘·명령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런데 전문에는 “하청에서는 원청에서 지급된 협력사 역량 인센티브 전액을 해당 근로자에게 지급” “원청은 하청에 대해 매월 인센티브 지급 명단을 출력해 공지토록 요구”라는 문구가 나온다. 원청이 직접 서비스기사들의 임금수준을 결정했다는 방증이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패소에 영향”

금속노조는 보고서를 작성한 중부지방노동청 관계자와 결재라인을 조사하고 법적 조치를 하라고 요구했다. 중부지방노동청의 요약보고서에 주요 내용이 누락되면서 지난해 1월 노동자들이 패소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현주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노동부가 요약보고서에서 누락한 내용 중 일부는 노동자들의 증언을 포함해 다른 경로로 증거를 확보해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대부분 인정받지 못했다”며 “수사기관이나 마찬가지인 노동부 요약보고서가 재판 결과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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