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넘치는 봄기운에 더위마저 느껴지던 4월의 끝 무렵. 서울 서부지역 노동자들과 ‘전태일 정신’을 노래로 퍼뜨리는 사람들이 경기도 화성 마도면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에 모였다.

주위에 쳐진 1미터 높이 철제 울타리가 교도소 안과 밖을 갈랐다. 울타리 건너편 건물은 교도소 민원봉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민원봉사실 너머 차가운 감방에 갇혀 있는 한 사람의 노동자를 떠올렸다. 더 멀리 서울구치소에 몸이 묶여 있는 또 다른 노동자도 추억했다. 두 사람을 하루라도 일찍 만나고 싶다고 노래하고 구호를 외쳤다. 절정에 달한 자목련 잎과 배추흰나비가 바람을 타고 춤을 췄다.

봄 풍경이 화사할수록 감옥에서의 날을 실감했다. 사람들은 자주 말을 멈췄고, 자주 목이 메었다. 두 노동자를 다시 만날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부지구협의회와 이소선 합창단이 지난 21일 오후 화성교도소 앞에서 '한상균 위원장·이영주 사무총장 석방 투쟁문화제'를 열었다.

"문재인 정부, 큰 잘못 방치"

이날 행사는 50여명의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끌었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김선동(50)씨도 함께했다.

“10년 투쟁을 하며 한상균 전 위원장이 바깥에 있었던 시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77일간 쌍용차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3년 감옥에 다녀왔고, 나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다시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했어요. 민주노총 위원장이 돼서는 민중총궐기를 조직했다며 다시 감옥에 있죠. 도대체 말이 안 됩니다.”

김선동씨는 “한상균 전 위원장은 누구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상대로 한 투쟁을 조직했고, 결국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역사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한상균 전 위원장과 이영주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감옥에 가두고 있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공항 하청업체 EK맨파워 노동자 김태일(56)씨도 집회에 나왔다. 그는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초대 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 지부장은 “지난해 4월 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총에 가입하고서야 한상균 전 위원장을 알게 됐다”며 “노동자는 하나라는 마음에 (집회에) 참석했고, 한상균 전 위원장과 이영주 전 사무총장이 하루빨리 바깥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신은 영원한 우리 위원장”

오후 2시30분께 문화제가 시작됐다. 단상은 노란색 펼침막으로 꾸며졌다. 펼침막에는 "한상균·이영주 석방은 적폐청산의 시작이다", "민주노총은 결코 동지를 버리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회는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여민희 조합원이 맡았다.

“2012년 8월 한상균 전 위원장의 만기출소 환영회를 지금 이 자리에서 했습니다. 그때는 다들 반갑고, 고마워 마냥 웃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또 몸짱이 돼서 나오셨잖아요. 오늘은 마냥 웃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응원이 저 담벼락 너머에까지 전해져 한상균 동지가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우리가 열심히 잘 싸우고 있구나 알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큰 함성으로 같이해 주세요.”

박영직 서부지구협의회 의장이 여는 말을 했다.

“박근혜 정권의 폭력적인 전횡을 저지하기 위해 2015년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를 했는데요. 경찰이 한상균 전 위원장을 체포하려고 했었죠. 저희가 저지해 겨우 피신했고요. 11월16일 조계사로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잊지 않고 있어요. 2015년 12월10일 오전 10시30분이었습니다. 관음전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그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잠시 후 “11시15분에 남대문경찰서로 압송됐고, 그 이후로 우리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울먹임과 함께 내뱉었다.

사회자도 자주 목이 메었다. 여민희 조합원은 "한상균 동지는 영원한 우리의 위원장"이라고 말했다. 박영직 의장은 “문재인 정부가 진정한 적폐 청산을 위한다면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우다 구속·수감된 한상균 전 위원장과 이영주 전 사무총장부터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담벼락·창살 넘는, 음악으로 하는 연대

전교조 조합원들이 만든 밴드 ‘풉’이 첫 무대를 열었다. ‘풉’은 이날 하루 자신들을 ‘한상균 위원장·이영주 사무총장 석방 요구를 위한 밴드’로 불러 달라고 했다. 이들은 가수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자작곡 ‘괜찮아’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통기타가 내는 담담한 소리와 피아노가 내는 영롱한 소리가 어우러져 담 너머 교도소로 흘러갔다.

“세상에 진실이 힘을 잃을 때, 거짓이 우릴 속일 때, 괜찮아. 괜찮아. 니 잘못이 아냐, 나한테 기대렴. 괜찮아. 괜찮아.”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 만든 밴드 ‘콜밴’도 등장했다.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이인근씨는 “한상균 전 위원장은 이 나라 민중을 위해 싸우다가 감옥에 있지만 바깥에 있는 동지들이 보다 더 꿋꿋하고 보다 더 즐겁게 투쟁하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기죽지 말고, 힘차고, 가열차게 투쟁하자”고 말했다.

콜밴은 ‘꿈이 있던가’ ‘주문’ ‘서초동 점집’을 불렀다. 심장박동을 연상시키는 반복적인 드럼소리에 기타와 베이스가 합세하면서 노동자가 꿈꾸는 세상을 들려줬다.

“기계처럼 살 때에 꿈이 보였던가. 빼앗기고 빼앗겨 남는 게 있었던가. 쓰러질지라도 찾아가는 것. 쓰러질지라도 만들어 가는 것. 하나 되어 이루려는 꿈.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하늘이 말하는 꿈. 사람이 하늘이다.”

"우리 모두가 한상균·이영주"

노동자 소리패 ‘한 판’은 고 이소선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다는 ‘농부가’와 ‘춘향가(옥중가)’를 불렀다. 북으로 장단을 맞춘 김호정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은 “한상균 전 위원장이 철탑에 올라갔을 때 홍어를 올려 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판소리 중 만담을 하듯 “한상균 전 위원장과 이영주 전 사무총장은 춘향이와 같다”며 “아무런 죄 없이 수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날 행사를 기획한 이소선 합장단이 무대에 올랐다. ‘우리 한편이다’ ‘천리길’ ‘해방을 향한 진군’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이름’을 열창했다. 이소선 합창단은 "우리 모두가 한상균·이영주라는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문화제 중간중간 “한상균을 석방하라” “이영주를 석방하라” “박근혜 정권 적폐를 청산하라”고 외쳤다.

윤충렬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투쟁사를 했다. 윤 수석부지부장은 “한상균 전 위원장이 만든 투쟁으로 적폐 청산이 시작됐는데 왜 적폐 청산을 주장하고 힘을 이끌어 낸 동지들이 감옥에 있어야 하나”고 반문한 뒤 “서글프고, 답답하고, 한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얘기한다면 그 적폐 청산에 앞장선 두 동지를 석방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해서 적폐를 박살 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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