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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는 약속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4년 4월16일로부터 4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그날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304명의 생명이 물속에 가라앉는 것을 지켜봤던 그 슬픔, 무기력함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사람 생명이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는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밀양과 제천의 화재참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데에 무감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도 한 해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숨진다. 기업이 노동자 생명보다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4월16일을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생명·안전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생명·안전사회는 생명존중이 법과 제도의 우선 원칙이 되는 사회다. 정부는 안전을 외부 위험에서 자국민의 영토와 재산과 신체를 지키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럴 때 경찰 등 정부의 물리력이 안전을 지키는 주체가 되고 시민들은 대상이 돼 버린다. 그래서 감시와 통제를 중심에 두고, 개인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거나 "안전장구를 잘 갖추라"거나 "안전의식을 가지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는 생명·안전사회가 아니라 통제사회일 뿐이다. 법이 생명을 우선하고 있는지, 기업과 사회의 여러 제도는 생명·안전을 일차적인 원칙으로 삼는지, 사람 생명을 비용으로 간주하는 일은 없는지를 파악하며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위험은 평등하지 않다. 세월호에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단원고 학생들이 대부분 희생됐다. 충남 태안 해병대캠프에서도 군대식 복종을 강요한 캠프 분위기 때문에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는 순간에도 다른 학생들은 그것을 막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기업 산업재해 사망자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들이다. 기업들은 위험한 업무에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대신 그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비정규직에게 떠맡겼다. 2016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군도 그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2015년 30대 기업 산재 사망자의 95%가 하청노동자라는 통계도 있다. 생명·안전사회는 위험을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사회를 바꿔 모든 이들이 권리 주체가 되도록 할 때에만 가능하다.

생명·안전사회는 재난과 중대안전사고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제대로 처벌할 때 가능하다.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를 하지 않은 해경 지휘부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노동자 생명을 죽음으로 내몬 기업 책임자들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기업에 대한 책임도 묻지 못했고, 기업의 최고책임자나 원청의 책임도 묻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관행처럼 안전을 비용으로 간주하고, 위험을 외주화했다. 일터에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살인’이다. 위험을 방치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범죄행위임을 분명히 할 때 기업과 정부는 사람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실질적인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안전사회가 되려면 노동자와 시민에게 권리가 있어야 한다. 지난 17일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삼성전자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이 직업병으로 사망했는데도 ‘영업비밀’을 지키기 위해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정부와 기업의 오만함이 계속되는 죽음을 만들고 있다. 노동자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13일에는 영주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이 누출돼 주민들이 대피해야 했다. 핵발전소의 위험은 주변 주민들에게 재앙이다. 노동자와 시민은 위험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위험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과 위험시설을 감시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안전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일상을 바꾸는 일이다. 일상의 세월호가 다시는 침몰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생명·안전사회를 만드는 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민들 힘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듯이, 생명·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시민과 노동자의 힘이 필요하다. 기업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이윤만능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정부도 아직 바뀌지 않았다. 기업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시민과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생명·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터에서는 노동자로, 사회에서는 시민으로 권리찾기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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