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표지회장이 18일 오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가 고 최종범씨의 묘소 앞에 술을 따랐다. 직접고용과 노조활동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상에 올렸다. 최종범씨는 회사의 표적감사 등 노조탄압에 시달리다 지난 201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기훈 기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대표지회장 나두식)가 삼성전자서비스와 합의한 협력업체 직원 직접고용을 7월14일까지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직접고용이 마무리된 뒤에는 노조를 유니언숍으로 운영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한다는 복안이다. 유니언숍은 일단 고용된 노동자는 일정기간 안에 노조 조합원이 돼야 하는 제도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는 노조가 사업장 종사자 3분의 2 이상을 대표하면 유니언숍 단협을 체결할 수 있다. 조직화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1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서비스 노사합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하고 계획을 밝혔다. 17일 노사가 서명한 합의서에는 협력업체 노동자 직접고용과 노조인정이 담겼다. 회사와 노조·이해당사자들이 세부 내용 협의를 개시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협력업체 직원 1만명 전원 직접고용해야”

지회는 7월14일을 직접고용 마무리 시점으로 제시했다. 2013년 7월14일인 지회 출범일에 의미를 부여했다. 지회는 “노사 각 3명으로 구성된 실무협의단을 구성해 빠르게 협의를 진행하겠다”며 “SK브로드밴드의 경우 지난해 협력업체 직원을 자회사로 전환할 때 (일부 협력업체가 반발해) 아직도 협력업체 5곳 노동자가 직접고용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만 잘 마무리되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은 지회로 조직화해 유니언숍 단체협약을 맺겠다고 밝혔다. 나두식 대표지회장은 “17일 합의한 ‘노조 인정’이라는 문구는 삼성전자서비스의 단독 결정이라기보다는 삼성그룹 차원의 결정으로 해석된다”며 “진정성 있는 합의 이행을 위해선 회사가 유니언숍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고용 대상자는 1만명으로 못 박았다. 지회는 AS센터의 엔지니어 5천500여명과 자재관리·콜센터·안내업무 노동자 4천500여명으로 추산했다. 정부가 추산하는 7천700여명보다 많다. 지회 조합원이 소속된 협력업체 엔지니어뿐 아니라 비조합원까지 모두 직접고용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회에는 협력업체 엔지니어 5천500여명 중 700여명이 소속돼 있다. 나두식 지회장은 “초일류 기업인 삼성그룹이 일부만 직접고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 지회장은 “지회 조합원들이 노조 가입서를 들고 회사에 출근하는 등 노조 조직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지회를 삼성그룹 노사관계 모델로 만들겠다”

노조는 이번 합의를 삼성그룹과 국내 간접고용 사업장 전체의 모델로 만들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삼성지회와 서비스연맹의 삼성에스원노조 등 삼성그룹 내에는 아직도 제대로 노조를 인정받지 못한 곳이 많다”며 “노조는 지회가 삼성그룹 노사관계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뿐 아니라 LG유플러스·포스코 등 불법파견의 명확한 근거가 있는데도 고용노동부나 검찰의 관리·감독이 미치지 않는 (기업)이 있는데 지회 합의를 시작으로 국내 모든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도록 노조가 앞장서겠다”고 했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지난 13일 사측이 먼저 직접고용 의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한 뒤 직접고용을 결정하기까지는 4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국내 재벌대기업이 고용한 간접고용 노동자 50만명을 직접고용하는 것은 대기업이 결단하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회는 “합의를 했다고 해서 검찰의 삼성 ‘노조와해 공작’ 수사 과정에서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지하 창고를 압수수색했다.

지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모란공원을 찾아 고 최종범 지회 조합원을 추모했다. 그는 지회 설립 석 달 뒤인 2013년 10월31일 목숨을 끊었다. 그는 당시 "배고파서 못살겠다"며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선택했으니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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