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2017년 5월1일 노동절에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크게 다쳤다. 이 사고는 그 비극성뿐만 아니라 조선업계에 만연한 불법 다단계 하청과 물량팀을 비롯한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된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사고가 나자 경남의 노동단체들은 즉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민변 경남지부와 금속노조 법률원도 법률지원단을 꾸려 피해 노동자 지원에 나섰다.

피해 회복의 길은 쉽지 않았다. 크레인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삼성중공업은 하청업체를 내세워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산재처리 및 보상을 처리하게 하는 등 사고 수습 과정에서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됐다. 휴업수당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휴업수당 문제와 관련해 삼성중공업은 법적인 책임을 부정하고 손실보상 명목으로 일부 금액을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하청업체들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휴업수당을 지급하거나 아예 폐업하기까지 했다.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은 공동대책위가 휴업수당 미지급 사례를 수집해 항의방문을 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자 사고 후 4개월이 경과한 지난해 9월이 돼서야 마지못해 근로감독을 했다. 공대위 정보공개신청을 통해 27억원의 휴업수당이 미지급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통영지청 근로감독에서 제외된 재하청업체·물량팀까지 포함하면 휴업수당 미지급액은 50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공대위의 판단이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소극적 업무처리로 피해 노동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공대위와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은 사고 직후인 지난해 5월11일 노동부 통영지청과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에 크레인 사고를 목격하거나 사고 수습에 참여하는 등 사고와 관련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실태파악을 요구했다. 트라우마는 우울증·불안장애·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이 따라오며 단기간에 치료받지 못한다면 만성화할 가능성이 높아 초기에 빠른 개입이 중요하다.

노동부는 그러나 사고가 난 지 한 달이 넘은 같은해 6월12일 설문조사를 했을 뿐 필요한 심리치료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같은해 10월 말 2차 실태파악을 했으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트라우마 피해 노동자들을 방치한 것이다. 게다가 공단은 트라우마 산재요양신청 업무처리를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고 오히려 “만 명 중에 한 명 정도로 인정되는 질병인데, 가능성 없는 산재신청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으로 2차 피해를 가했다. 공단은 해가 바뀐 올해 1월12일 산추련을 비롯한 지역 산재운동단체들의 항의방문을 받고서야 2차 피해를 사과하고 신속한 업무 처리를 약속했다. 드디어 올해 1월30일 크레인 사고 목격자에 대한 산재신청이 처음으로 승인됐다. 하지만 물량팀장이라는 이유로 산재신청이 불승인되고, 부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피해자가 발견되는 등 크레인 사고로 인한 산재 처리 문제가 아직도 쟁점이 되고 있다.

크레인 사고로 인한 피해 회복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원청업체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제도개선 문제는 좀처럼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부족한 사회적 관심도 현장 활동가들에게는 고민거리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크레인 사고에 관심을 보여 현장 활동가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의 김동현 변호사가 1월 말 법률지원단에 노르웨이 언론사 취재요청 소식을 전한 것이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당시 거제조선소 도크에서 노르웨이로 수출하는 해양플랜트 모듈을 작업 중이었는데, 그 사고에 관심을 가진 노르웨이 기자가 크레인 사고 1주기를 앞두고 피해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방한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국내 언론도 관심이 없는 문제에 외국 언론이 취재를 한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고, 법률지원단이 1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 오면서 무력감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는 계기도 됐다. 법률지원단은 희망법·산추련과 논의해 적극적인 취재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노르웨이 기자는 4월15일부터 1주일간 방한한다.

5월1일은 노동절이자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1주기다. 피해 노동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를 상대로 한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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