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제철에 나는 먹을거리만큼 우리 몸에 좋은 보양식이 없다는 말이 있다. 내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머위와 두릅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갓 땅에서 올라온 연한 머윗잎을 따다 살짝 데쳐 쌈으로 먹으면 쌉싸래한 그 맛은 비싼 반찬 부럽지 않다. 도톰하게 살찐 두릅을 초고추장에 찍어 한입에 쏙 넣을 때 입안에 번지는 두릅 특유의 향이 머리를 맑게 해 준다.

노동자에게 점심시간은 짧은 행복을 주는 시간이다. 한 끼 점심이 노동자에게는 재충전의 소중한 에너지가 된다. 규모가 있는 회사는 대부분 구내식당을 운영한다. 며칠 전 중소기업을 방문했다가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먹은 적이 있다. 작은 회사치고는 구내식당이 깔끔했고 식사 질도 훌륭했다. 직접 구운 돼지고기에 상추쌈을 곁들인 반찬이 나왔다. 웬만한 대기업에서도 먹기 힘든 반찬이었다. 노조 간부는 노조가 생긴 이후로 식당이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식사는 노조가 역점을 두는 복지사업이기도 하다. 최근 방문한 어느 대기업 노조는 식당업체를 바꿨다고 했다. 그동안 퇴직한 간부가 운영하는 회사에 식당을 맡겼는데 식사 질이 나빠 업체를 바꿨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거에 식당을 방문했을 때 사무실 구석에 층층이 쌓인 중국산 양념통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국산 양념을 사용한 업체가 노동자 건강을 우선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노동자는 잘 먹어야 한다.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은 건강식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건강식은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정크푸드(junk food)가 아니라 제철에 음식이나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이다. 노동으로 노동력을 소비하면 그 노동력은 고갈되기 때문에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야 한다. 건강식으로 좋은 에너지를 충전한 노동자가 양질의 노동을 발휘할 수 있다. 건강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일은 못해도 먹는 것은 아끼지 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만큼은 고 정주영 회장의 정신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잘 먹어야 일도 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음식을 두고 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인들은 아셨던 게 아닌가 싶다.

스트레스가 많은 노동자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 노동으로 발생한 스트레스는 그만큼 인간 자원을 많이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홉폴(Hobfoll)이라는 학자는 자원보존이론을 만들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필요한 자원을 만들고 보유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노동력을 추상적 수준에서 정의하고 있다면 홉폴은 노동력 구성요소를 유형별로 세분화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설명하는 자원은 개인 외부에 존재하는 자원과 내부에 존재하는 자원으로 나뉜다. 사람 몸 밖에 존재하는 고용안정, 결혼,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것을 맥락적 자원(contextual resource)이다. 개인이 보유한 지식이나 건강, 시간은 개인자원(personal resource)이다. 노동자가 두 자원 모두 충분하게 충족했을 때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자원을 재생산하는 능력이 감소한다. 고갈된 자원을 보충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심화한다.

자원보존이론을 교대근무자나 간호사에게 적용할 수 있다. 교대근무자는 구조적인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생체리듬이 불규칙해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노동자일수록 충분한 휴식과 건강한 음식을 제공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간호사들은 점심시간은커녕 휴식시간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조건에서 일한다. 자원을 재충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노동을 하니까 그만큼 자원이 빨리 소진된다. 간호사 근속연수가 짧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업이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한 끼 식사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직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원천이다. 그 에너지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건강식에는 비용 이상의 가치가 들어 있다. 이왕이면 우리 땅에서 거둔 건강식으로 차린 식단을 매일 먹게 해 주면 좋겠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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