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삼성 없는 한국 경제는 상상하기 어렵다. 삼성그룹 매출액은 국내총생산의 20% 규모고, 영업이익은 상장기업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삼성전자가 수출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는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의 절대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술적 측면에서도 선진국 추격을 넘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국내총생산 대비 높은 연구개발비 지출(세계 2위) 덕인데, 여기서도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 전체 연구개발비의 25%에 이른다.

삼성은 우리 국민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기업이다. 그래서 국민은 삼성을 이재용 일가에게만 맡겨 둘 수 없다. 이재용 가문의 독특한 취향이나, 가족 내부의 관심사가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자동차 취향 탓에 만들어진 삼성자동차 부도사태나,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때문에 발생한 박근혜·이재용 게이트가 대표적 사례다.

삼성 이재용 일가의 족벌경영은 한국 사회에 역사적 상흔을 여럿 남겼다. 내 생각에 가장 깊은 상처는 정경유착과 노조탄압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병철은 현재의 삼성을 정경유착으로 만들어 냈다. 이병철은 헐값에 불하받은 적산기업 설비와 거의 공짜로 공급받은 미군 원조물자를 이용해 큰 부를 쌓았다. 특히 이병철은 5대 시중은행을 모두 헐값에 정부로부터 인수해 투자자금을 독점하고, 그 자금을 이용해 문어발 확장을 하며 국내에서 가장 먼저 재벌그룹을 만들어 냈다. 물론 이승만 정권의 비호가 없었으면 이 모두는 애초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삼성 이병철의 이런 정경유착 사업 모델이 이후 우리나라의 일반적 사업 모델로 정착됐다는 점이다. 정주영(현대)·조중훈(한진)·김성곤(쌍용) 등 1950~1960년대 기업인 신화들은 대부분 삼성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들은 적산기업, 미국 원조·복구사업 등을 정경유착으로 따내 자산을 축적하고, 그 자산으로 다른 중소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며 그룹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때 형성된 정경유착 사업구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노조’ 전략은 삼성의 유명한 트레이드마크다. 이재용의 선대 회장들은 초지일관 “노조만은 안 된다”는 말을 가훈처럼 강조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수출기업 대부분에 민주노조가 건설될 때도 삼성은 총수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노조 설립을 봉쇄했다. 그리고 삼성의 이런 철저한 무노조 전략 탓에 노동자 대투쟁은 첨단산업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전자산업·정보통신산업 내 거의 모든 기업의 원청인 삼성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하청에도 노조가 설립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삼성이 업계 1등이던 금융·유통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의 이런 무노조 전략이 한국의 집단적 노사관계에 미친 부정적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 삼성 탓에 초기업적 노사관계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만약 삼성에도 노조가 있었더라면 전경련이나 경총 같은 기업가단체들도 전국교섭·산별교섭을 고민했을 수 있다. 규모로 봐도 수출산업 전체에 노조가 있는 셈이었고, 기업별 노조보다는 산업적 분배를 요구하는 산별노조가 노사관계 관리에 더 효율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경제 전체로 봐도 사업주의 지불능력에 의존해 기업 내에서 임금교섭을 하는 기업별 노조체계는 직무나 생산성이 아니라 기업을 경계로 임금격차가 확대되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기업가단체들은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초기업적 교섭을 주장할 때 이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재벌 위의 재벌이라 불리는 삼성은 아예 집단적 노사관계 자체를 부정했다. 그리고 전경련이나 경총도 당연히 삼성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움직였다. 삼성 입장에서 보면 무노조전략을 지키는 데는 차라리 다른 기업 내부에만 노조가 있는 것이 더 유리하기도 했다. 보수언론이 귀족노조라고 비아냥대는 대기업 노조체계는 민주노총이 바란 것이 아니라 삼성과 기업가단체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초기업적 노사관계 부재로 인해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높아지는 데도 제약이 컸다. 노조 조직률이 10%도 되지 않는 데에는 삼성 책임이 상당히 크다.

며칠 전 삼성에서 6천건에 달하는 노조탄압 문서가 발견됐다. 박근혜 게이트 와중에도 노조탄압 문건이 작성됐다 하니, 참으로 징글징글한 작태다. 정경유착과 노조탄압,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하는 한국 경제의 여러 구조적 문제점들을 이재용이 확대하고 있다.

삼성, 우리나라에서 정말 중요한 기업이다. 그래서 결코 이재용 일가에게만 맡겨 둘 수 없다. 삼성을 구해야 한다. 반성이란 말 자체의 의미를 모르는 족벌에게서 삼성을 구해야 한다. 정부가, 시민이, 그리고 노동조합이 삼성을 구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에 발각된 부당노동행위를 엄벌하고, 시민은 이재용 정경유착에 대해 올바른 대법원 판결을 주문하며, 민주노총은 삼성에 노조를 더 만들어야 한다. 자, 이제 우리가 삼성을 구하자! 이재용 일가로부터!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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