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우리 사회 역동성을 보여 주듯 이번주에도 뉴스가 줄을 잇고 있다. ‘남북예술단 교류’ ‘개헌’ ‘지방선거’, 이뿐만 아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 발표도 눈에 띈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 사건 등 5건을 전면 재조사(2차)할 것을 권고했다. 대부분 권고 사건이 2000년대 전후에 발생했고, 여전히 의혹이 많이 남아 있는 사건들이다. 앞서 권고한 1차 사전조사 대상은 김근태 전 의원 고문 은폐사건(1985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1987년) 등 30년이 지난 사건들도 있었다.

어디 법무행정뿐이랴. 교육·문화·체육, 특히 노동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기대, 그리고 정부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일부 이견도 있다. “너무 늦지 않았느냐, 이미 지난 것을 무엇하려고 다시 들춰내느냐”는 식이다. 일견 들을 만한 주장도 있다. “실체적 진실을 찾는 것 못지않게 행정의 신뢰와 법적 안정성도 중요한 덕목이다”는 견해다.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격언은 법조에는 꽤나 알려져 있다. 1800년대 중반 영국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몇몇 언론지상에서 ‘정의론’을 논하며 자주 인용하곤 한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 보면 뭔가 ‘비논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부분 ‘바로잡아야 할’ 우리 사회의 많은 숙제를 ‘너무 늦었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의 논거로 끌어다 쓰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글래드스턴이 이런 표현을 쓴 진정한 의미는 쏙 빼놓은 채 말이다. 이런 걸 두고 왜곡이라고 하지 않던가.

물리적 시간의 잣대만으로 평가하더라도 과거사위가 권고한 사건들의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전혀 ‘늦지’ 않았다.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활동 중이거나, 특히 가해자가 형사처벌 대상이라면 더욱더 분명한 실체를 확인해 단죄할 필요가 있다. 재조사가 권고된 사건들은 길어야 고작 한 세대 전이고 대부분은 흐른 시간이 10년 안쪽이다. 형사처벌 전제인 공소시효 문제도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살인죄를 비롯한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땐 보이지 않았던 증거도 오늘의 기술로 극복이 가능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미제 사건이 ‘쪽 지문’ ‘혈액검사’로 해결됐다는 소식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시간이 정의를 거스를 수 없다는 시민과 노동자들의 요구가 크다. 억울한 누명으로 힘든 세월을 보낸 이들이 누명을 벗었다는 소식도 자주 들린다. 참으로 다행이다. 한승원 변호사가 지난해 재심을 통해 4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영화 <재심>으로 세상에 알려진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이 18년 만에 처벌되기도 했다.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도 더 늦지 않게 생활의 정의를 찾자는 운동이다.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 신체와 행동 침해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이제는 서서히 노동 분야에서도 ‘미투’가 크게 불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

최근 외신에서는 영국 ‘미투 운동’ 확대를 소개했다. ‘미투 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는 나라 중 한 곳이 영국이다. 정치인 상당수가 정계를 떠나거나 처벌받을 지경에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리고 “Pay Me Too”로 그 운동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남녀 간 임금격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거리로 나섰다.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훨씬 작다는 데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돌아보면 참으로 참담한 수준이다. 성별 간 임금격차만을 두고 본다면 최악 수준이다. 우리나라 여성노동자 임금은 남성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어디 임금격차뿐이랴. 1천만 비정규 노동자, 이들의 임금수준이 겨우 200만원 남짓, 그리고 이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우리나라 노동현장.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는 노동현장 문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 이제는 해소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만 하면 된다. 치열한 토론과 대안제시가 필요하다. 이때를 놓이면 정말 ‘너무 늦은 정의’ 타령을 하게 될는지 모른다.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제발 없어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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