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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이 오싹한 노동계 블랙리스트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여러 부처가 내부개혁 깃발을 올렸지만 성과를 거둔 곳은 드물었다. 두드러진 성과를 낸 곳은 국가정보원 정도다. 세월호 참사 관련 사이버 대응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자치단체장 사찰, 국정원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선보고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다. 적폐청산 TF가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국정원 개혁발전위는 지난해 11월 불법행위 관련자 54명에 대해 검찰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

국정원이 나서자 다른 부처도 동참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외부 전문가·학자를 중심으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이병훈)를 장관 자문기구로 꾸렸다. 행정개혁위는 노동행정·근로감독·노사관계·산업안전(산재보상 포함)·권력개입과 외압 방지 등 5개 영역을 살폈다. 행정개혁위는 지난 28일 권력개입·외압 방지와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빌미로 비선기구를 설치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명목상으론 노동부 차관 산하에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 설치됐다. 실제로는 청와대가 지휘했다는 결론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인 이병기씨와 고용복지수석인 김현숙씨가 당사자다. 박근혜 정부가 5개 노동관련법 국회 처리 압박수위를 높였던 시절이다.

2015년 말에서 2016년 4월 국회의원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국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총선 이슈로 ‘노동개혁’을 내걸었다. 고용보험기금·예비비·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사업비 등 89억원을 홍보비에 쏟아부었다.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혐의가 짙다. 5대 노동관련법 처리에 반대하는 야당을 타깃으로 보수단체를 동원한 맞불시위도 놓았다. 공무원 직권남용과 국가공무원법 위반에 해당한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합의 파기를 선언한 한국노총을 정부보조금 지원 중단으로 겁박했다.

행정개혁위는 권력개입·외압 퍼즐을 맞췄다. 한데 허전하다. 권력개입과 외압을 지적하면서도 손발을 맞춘 노동부 고위관료들의 행태를 지적한 대목이 너무 미흡하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고용복지수석이 진두지휘했다면 부처업무를 책임지는 당시 장관과 차관은 어떤 역할을 했다는 것인가. 낱낱이 밝혀야 한다.

사실 행정개혁위 발표는 새삼스럽지 않다. 노동개혁 홍보비 과다책정 부분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야당이 지적해 논란이 일었던 사안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국정원 고용보험 정보 요청'이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303개 조직, 592명의 고용보험 자료가 국정원으로 흘러갔다. 국정원은 어떤 근거로 자료를 요청했고, 어떻게 사용했을까. 행정개혁위가 밝히지 못한 부분이다. 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해 국정원에 사실확인을 하도록 권고하는 데 그쳤다. 국정원 자기고백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다.

국정원이 자료를 요청한 근거는 국정원법 3조(직무)와 15조(국가기관 등에 대한 협조 요청)다. 3조는 국정원 직원의 직무로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배포를 규정하고 있다.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이 국내 보안정보 영역에 해당한다. 15조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직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협조와 지원을 관계 국가기관과 공공단체 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두 조항을 바탕으로 노동부에 고용보험 자료를 요청했다지만 실제로는 법적 근거는 없다.

게다가 이상한 대목이 있다. 보통 국정원은 공공기관과 정부부처에 개인정보를 요청한다. 기업과 민간기관을 특정해 해당 인사들의 자료를 요청하지 않는다. 행정개혁위 발표에 따르면 국정원이 6년간 303개 조직의 고용보험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노동부 안팎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민간 대기업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자료가 국정원으로 대거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작성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9천743명은 분야별로 분류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정보였다.

이병훈 행정개혁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왜 (국정원이) 고용보험 정보를 민간인 또는 기업·단체 조직에 대해 청구하게 됐는지, 어떻게 활용됐는지 노동부에 소명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사찰 문제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시작해 박근혜 정부 때까지 이어졌다. 개인이 아닌 국정원이 지목한 집단(기업) 구성원들의 고용보험 자료가 유출됐다고 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이런 심각한 사안이 부각되지 않는 듯해 안타깝다.

박성국 논설위원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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