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병훈 위원장과 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박근혜표 노동개혁'의 민낯이 드러났다. 각종 불법과 부당행위가 난무했다. 양대 지침과 성과연봉제로 대표되는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동계에 외압을 넣고, 보수청년단체와 언론을 동원해 여론몰이를 했다. 국가정보원이 고용보험 자료를 이용해 민간인을 사찰한 정황까지 확인됐다.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던 김현숙씨가 비선기구인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을 운영하면서 외압 행사를 주도했다는 게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이병훈)의 판단이다.

◇청와대 지휘 '비선기구'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병훈 위원장은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개혁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2015~2016년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라는 비선기구를 운영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을 명분으로 공정해고(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발표하고, 공공·금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확대를 밀어붙이던 시기와 맞물린다.

상황실은 2015년 8월7일 형식상 노동부 차관 직속기구로 설치됐지만 실제로는 김현숙 당시 수석이 지휘했다. 상황실은 청와대 노동시장개혁TF회의(BH회의) 자료를 작성하고 BH회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기구였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9층에 사무실을 만들어 놓고 노동부·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 전문인력 10여명이 상주했다.

'보안'은 빈틈없었다. 매일 문서를 삭제하고 출력물을 파쇄했다. 문서파일의 경우 개인 컴퓨터 보관을 금지하는 비상상황 대응계획까지 만들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비밀TF 실체가 폭로된 뒤 상황실에 "문서보안을 철저히 하라"는 지침이 내려갔다고 개혁위는 전했다.

상황실은 BH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했다. 2015년 4월8일 노사정 대화 결렬을 선언하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한국노총을 압박했다. 보수청년단체를 동원하고 야당 대응방안을 수립했다. 언론을 상대로 기획기사·전문가 기고 조직화에도 나섰다.

◇고용보험기금 전용해 노동개혁 홍보=상황실은 노동개혁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88억9천만원을 전용했다. 고용보험기금에서 35억원, 예비비에서 53억9천만원을 가져다 썼다. 심지어 2015년 세대 간 상생고용지원사업 집행액 18억700만원 중 13억원을 노동개혁 홍보예산으로 사용했다. 그 돈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을 조성하거나 사회적 고립을 조장하는 이미지 광고를 만들었다.

2015년 8월7일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이 "과도한 보호를 받고 있는 노조를 압박하자는 취지이므로 노동단체를 자극하더라도 메시지 창출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이후 "갑 중의 갑 기득권노조" "10%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과 노동단체" 같은 기획기사와 카드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상황실은 야당을 비판하거나 노동단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보수청년단체를 이용했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소속 공무원이 BH회의에 참석해 청년단체 동향을 보고하고, 김현숙 당시 수석이 청년단체 동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보수청년단체들의 노동개혁 촉구 기자회견·성명서·퍼포먼스·토론회·피켓시위가 김 전 수석 작품이었다.

2015년 4월 노사정위를 탈퇴한 한국노총을 복귀시키기 위한 전략도 짰다. 그해 이미 확정돼 있던 국고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2016년에는 한국노총을 지원대상 사업에서 아예 배제했다. 돈줄을 죄는 전략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이병기씨 아이디어였다. 언론사에는 돈을 주고 노동시장 개혁 기획기사를 청탁했다. 전문가 기고는 노동부가 전문가를 섭외해 기고문을 청탁하고, 원고를 받으면 언론사 지면을 확보해 게재했다. 예컨대 '공정해고'를 주제로 한 MBC <100분 토론>(2015년 9월22일)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획·추진됐다.

개혁위는 이 밖에 국가정보원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고용노동부 지방관서를 대상으로 민간인 592명과 기업 303곳에 관한 고용보험 정보를 요구한 사실을 밝혔다.

◇김영주 장관 "권고사항 성실히 이행"=개혁위는 김영주 노동부 장관에게 상황실 운영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김현숙 전 수석과 이병기 전 비서실장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라고 권고했다. 국정원이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열람해 활용한 의혹이 있는 만큼 국정원에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고용보험 자료를 구체적으로 활용했는지 국정원 소명을 들으라고 주문했다. 또 상황실 업무수행 이력을 이유로 상을 받았던 공무원 포상을 취소하고, 김 전 수석과 이 전 실장 수사 과정에서 위법성이 확인된 공무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요청했다.

김영주 장관은 이날 "비록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위법·부당한 업무를 추진한 의혹으로 국민께 실망을 드린 데 소관부처 장관으로서 사과한다"며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개혁위가 권고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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