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시장 분절은 심각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은 갑을관계로 나뉘고 덩달아 노동자들 처우도 갈린다. 격차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분절된 노동시장과 노조 조직률로 표현되는 노동운동 위기는 쌍생아다. 노동운동은 돌파구를 찾고 있다. 열쇠는 연대다. 원청 노동자들이 원·하청 공정거래를 요구하고, 대공장 노동자들은 연대임금을 교섭에서 제안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연대기금 조성에 눈길을 돌린다. 노동자들의 시도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사회적 책임 다하려는 노조운동의 자기 혁신 움직임
이병훈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 이사장

이병훈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 이사장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조직 이기주의와 폐쇄적 문화로 비판과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런데 노조가 주축이 돼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양극화된 사회의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노동운동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부와 사측을 향한 투쟁 중심의 활동이 노조운동의 전통적 모습이었다. 물론 정책·제도 개선과 조합원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소홀했던 사회적 책임을 직접적인 기금의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 노조운동의 자기 혁신 움직임으로 평가할 만하다.

공공상생연대기금은 공공부문 노조 대표자들의 제안으로 시작돼 공공기관의 임직원의 기금을 출연받아 지난해 말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여러 공공기관 노사의 출연을 받고 있다. 재단 이름처럼 ‘공공’과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을 찾고 있다. 청년들과 비정규직·은퇴자·경력단절여성 지원을 위한 사업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사업을 만든다는 합의가 모아졌다.

우리는 물 뿌리는 사업이 아닌 씨 뿌리는 사업을 하고자 한다. 시혜성으로 기금을 나눠 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닌 기금이 지속적으로 상태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사업을 만들려는 것이다. 현재 아이디어 공모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제안된 사업을 올해 하반기부터 이행할 예정이다. 노동계에서 기금을 모으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 재단을 설립하고 큰 단위로 진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흐름을 계기로 다른 노조들도 이런 기틀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노조 간 네트워크를 통해 좋은 사업을 더 크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격차해소 위해 산별체제로 가야
정일부 금속노조 정책실장

정일부 금속노조 정책실장

금속노조는 올해 '하후상박'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원청사보다 하청사의 임금인상에 힘을 싣고, 우리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해 실질적으로 실천하자는 것이다. 하후상박 인상요구의 차이 만큼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원청사 갑질에 대책을 세우고 원·하청 간 연대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와 함께 금속노조는 ‘산별임금체계 마련을 위한 금속산업 노사공동위원회 구성’을 중심 요구로 제기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 격차의 근본 원인인 기업별로 분절된 현재 상태를 넘어설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같은 문제에 원·하청 노동자가 힘을 모아 함께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며, 촛불투쟁의 염원인 평등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재벌체제를 개혁하는 일에 정부가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속노조는 사용자들이 우리 사회 격차 해소에 동참하도록 투쟁할 것이며, 정부 역시책임 있게 나서도록 촉구해 나갈 것이다.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 실현하자
문현군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미조직비정규담당)

문현군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미조직비정규담당)

극심한 경기불황과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주체인 노동계가 나서야 한다. 재계는 노조의 경영참여를 지배개입이라고 호도하지만 경제주체의 한 축인 노조가 경영에 참여할 때 노사 상생의 틀 속에서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실현할 수 있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노동시간단축을 실현하고, 일자리 나누기로 경기불황과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노조는 일부 보수언론과 자본에 의해 ‘기득권 집단’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노조 스스로 이런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최근 노동계에서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한 번에 해소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복리후생 측면에서는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 금융기관과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노조가 무기계약직을 조합원으로 끌어안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에게도 손을 내밀어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나서고 있다. 노동계가 기득권을 내려놓는 좋은 시도다. 한국노총은 지난해부터 비정규직 연대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한국노총 역사상 정규직 노조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연대기금을 내놓은 경우는 많지 않다. 정규직노조가 우리 사회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이해와 양보로 일자리를 나누고 일자리 질을 개선하는 데 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동참하길 바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시장논리·입법으로는 한계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동시장 고용형태가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생산되지 않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미 국제노동기구(ILO)는 1999년께 양질의 일자리 캠페인을 시작하며 이 문제를 지적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숙련을 향상시키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에 견줘 봐도 저임금 근로 비중이 너무 높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기업 규모에 따라, 조직노동·정규노동에 대비해 조직되지 않은 노동과 비정규 노동의 격차는 3~4배 수준으로 벌어져 있다. 이 문제는 사회적 대화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의 양과 노동의 질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화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질이 낮은 저임금 일자리가 너무 많다. 기업의 규모나 종사형태에 따라 일에 대한 보상이 양극화돼 있다. 이 문제는 시장 논리나 입법으로 강제하는 방법으로는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최근 사회적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고 여기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현안을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기술변화에 따라 디지털 경제 영역이 커지고 컴퓨터가 사람을 대신하면서 일의 총량이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근로시간단축 등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가 동반돼야 한다. 기술이 변하는 조건 속에서 숙련을 향상시켜서 생산성을 향상하고, 좋은 일자리를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이 모든 일은 당사자 간의 사회적 대화가 필수 요소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