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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스르는 받아쓰기
▲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친원전을 주장하는 분들이 지난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원전수출 국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 본부장은 황일순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 교수가 맡았다. 중앙일보는 다음날 16면에 <“원전 기술 수출, 경제 숨통 틔워 줄 유력한 대안”>이란 제목으로 회견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황일순 교수는 지난해 8월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정부의 (탈핵) 시나리오대로 가면, 2030년 전기요금은 지금보다 3.3배 오를 것”이라고 했다. 언론은 이 숫자를 그대로 받아썼다. 하지만 근거를 따져 묻자 황 교수는 “자신은 전기요금 분야 비전문가”라고 발을 뺐다.

황 교수는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가 발주하는 연구개발(R&D) 연구용역 21건(30억원)을 받아 이 부문 3위를 기록했다. 황 교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이 아닌 쓰나미 때문에 일어났고, 지금까지 지진으로 원전사고가 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황 교수의 말을 받아 조선일보는 “당시 9.0 규모의 지진도 발생했지만 지진 자체는 원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궤변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던 쓰나미가 아무 일 없이 그냥 일어났단 말인가.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하나다.

원전수출 국민행동은 원전수출 촉진 100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가고 다음달 21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런 걸 받아쓰는 중앙일보를 보면 원전마피아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조차 어렵다.

그동안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은 대부분 친원전 인사들이 주도했다. 탈원전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예 없거나 한두 명에 불과했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식의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이번엔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정책을 수립할 72명의 민간위원을 뽑으면서 탈원전 정책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상당수 넣자마자 조선일보는 20일자 1면에 <20년 에너지정책 짜는데 … 원전 찬성 전문가 다 뺐다>고 응수했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면 친원전 인사를 다 뺀 것도 아니다. 두산중공업 부사장과 한국수력원자력 간부 등 친원전 인사도 2명 들어갔다. 친원전 일색이던 과거엔 침묵하다가 단 한 번 판이 뒤집혔다고 이렇게 호들갑이다.

한겨레신문은 21일자 경제면(17면)에 ‘대기업들 채용·근무시간 변화 바람’이란 문패를 달고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롯데마트의 자율 출퇴근제 도입을 홍보했다. 대체로 재벌의 이런 언론플레이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다. 국민은 다 아는데 기자들만 모르는 모양이다.

서울시도 과로로 인한 직원 자살이 잇따르자 야근을 없애는 이런저런 캠페인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지금도 시청 본관과 별관 사무실은 밤 10시를 넘어서도 불야성이다.

정부와 국회가 장시간 노동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노동시간을 줄이자마자 조선일보는 이에 반대하는 시리즈를 쏟아 냈다. 조선일보의 시리즈기사 문패는 ‘눈앞에 온 근로시간단축’이다. 조선일보는 20일자 1면 “주 52시간 틀에 갇히는 ‘한국 벤처의 꿈’”이란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어 해설면(3면)에선 <스타트업은 시간 싸움인데 … “성공 위해 밤새우는 것도 안 됩니까”> <“스타트업, 초과근로 인정하고 스톡옵션 지급 명문화해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자발적으로 일 더하는 건데 사무실 불 강제로 끄면 되겠냐”고 볼멘소리를 해 댄다. 지난해 ‘구로공단의 등대’(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로 알려진 넷마블 노동자들의 과로사 사건을 겪고도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정상인지 모르겠다.

원전과 화석에너지 축소, 노동시간단축은 세계적인 흐름인데 언론만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이정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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