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청와대가 대통령 발의 헌법 개정안을 잇따라 소개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6일 정식으로 발의할 예정이란다. 소개된 내용은 전문부터 경제질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담고 있지만 전체 모습은 아마도 며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법문 특히 헌법이라는 것이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터라 현 단계에서 개정안에 관한 정확한 분석을 내놓기 쉽지 않다.

보수언론은 비판의 날을 세운다. 국회 몫을 대통령이 앗아 갔다는 얘기다. 이런 투정은 헌법을 모르거나 한심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헌법(128조1항)이 대통령에게도 동등하게 헌법 발의 권한을 주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그렇게 많은 날 동안 뭐 하다 이제야 "국회를 무시한다"고 푸념이란 말인가. 더구나 지난 대통령선거 공약 아니던가. 국회는 자신들의 게으름을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나름의 안을 내놓으면 그만이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더 나은 헌법을 만들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만 보면 현행 헌법과 비교해 적지 않은 발전이 보인다. 5·18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았고, 헌법의 핵심이라 할 기본권에서는 보편적 천부인권의 주체를 우리나라 국민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확인했다. 생명과 환경 등 크게 성장한 우리 사회 모습을 담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개정 헌법이 시행되면 우리는 4년 내지 8년 임기 대통령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로서는 노동기본권 확충에 관심을 가졌다. 근로를 노동으로 그 표현을 바꾼 것은 하나의 용어 변경 이상의 가치가 있음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법률 수준(근로기준법)에 머물러 있던 근로조건을 노사가 대응한 지위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도 헌법정신에 담았다.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 불리지 못했던 공무원도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외워 왔던 근로의 의무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권리로 제자리를 찾았다.

일부 언론은 벌써부터 “아예 국회 통과가 불가능한 안이다. 노동기본권은 전혀 불가능한 말을 적었을 뿐이다. 공무원에게 파업권이 웬 말이냐”고 초를 친다. 노동자들이 보기에는 정반대다. 부족하고 아쉬움이 크다는 말이다. 참고로 양대 노총은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부터 노동헌법 개정안을 준비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개정 헌법에는 노동의 가치가 최대한 온전하게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은 청와대에도 전달됐지만 별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원칙’에서 크게 후퇴했다. 평등의 원리에도 부합할뿐더러 양극화된 오늘의 노동시장을 정상화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드시 헌법에서 확인돼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 발표에서는 ‘원칙’이 아니라 단순 ‘노력 의무’였다. 헌법상 ‘의무’를 가벼이 볼 수는 없지만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조건에서는 ‘노력’만 강조될 게 뻔하다.

노동자 경영참여 보장이 빠진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나라 법제 내에서 노동자는 회사와의 관계에서 그 어떤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다. 노동조합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용자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 정리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정리대상일 뿐이다. 정작 회사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진짜 주인인 노동자를 빼놓고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을 담보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 경영참여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제도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참여에는 곧 책임이 따릅니다, 경영자 입장에서도 노동자 경영참여를 적극 보장해야 합니다.” 지난 20일 오후 한국노총을 찾은 주한 독일대사 슈테판 아우어가 김주영 위원장 질문에 한 답이다.

제헌헌법에 있었던 이익균점권,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적절한 소득 보장도 헌법에 꼭 담아야 할 것들이다. 발의일까지 추가 변경이 가능하다면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했으면 한다. 노동기본권과 노동자의 삶에 직결되는 노동시장 기본질서 외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헌법정신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필자는 노동현장 리포트에 “우리나라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앞서 ‘평등’의 정신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제는 ‘자유’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평등’을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자유가 덜 중요해서가 아님은 긴 말이 필요치 않으리라.

곧장 국회 내외에서 각 주체의 다양한 헌법안이 제시되고 토론이 활발해질 것이다. 노동자와 시민들도 더 나은 헌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내용과 방법에 있어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오래도록 자랑스러워할 미래 헌법의 필요조건이다.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를 둔 민주공화국이다.” 이탈리아 헌법 1조는 한없는 토론의 결과물일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