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병원노동자 10명 중 5명이 폭언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3명은 ‘태움(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 간호사들에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혀 공연하게 한 성심병원 사태나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 투신 사건처럼 최근 터져 나오는 병원 관련 사건사고 뿌리가 예상보다 깊은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조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의료기관 내 갑질과 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조는 지난해 12월18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2개월 동안 실태조사를 했다. 노조 조사에 참여한 보건의료 노동자(노조 조합원)는 1만1천662명이다. 간호사(7천703명)와 의료기사(1천970명)·사무행정(718명)·간호조무사(648명)·기타 직종(624명) 노동자들이 응답했다.

노동자 46% “병원 행사 강제동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태움 문화’를 경험한 병원노동자는 31.2%였다. 56.2%는 욕설·반말·험담을 비롯한 폭언을 들었다.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한 노동자는 10.9%였고,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노동자도 7.6%나 됐다.

노동자 46.1%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장기자랑·체육대회·학술대회를 비롯한 병원 행사에 강제로 동원됐다”고 응답했다. 간호사 장기자랑은 지난해 성심병원 사건으로 사회적 논란이 됐다. 업무와 관련 없는 행사에 참여해 단체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춘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25.3%였다. 19.7%가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인권침해를 당하거나 부당한 업무를 강요받은 경우도 잦았다. 11.4%가 인권침해를 받은 적 있다고 했다. 개인사물함을 검사받거나 CCTV로 감시를 받았다는 노동자도 있었다. 17.9%는 커피 심부름 같은 업무와 무관한 상급자·의사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노조 "4아웃 운동으로 문화 바꾸겠다"

경기도지역 한 병원 간호사 A씨는 “5년차까지 병원 개원기념일이나 송년회 때마다 장기자랑을 했다”며 “일하는 것도 힘든데 높은 사람들 비위 맞추려고 춤을 춰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A씨에 따르면 이 병원은 2015년까지 장기자랑에 노동자들을 동원했다. 그는 “술자리도 많이 불려 간다”며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의사에게 술을 따르거나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잦다. 의사들이 회식 때 동료들에게 신체를 접촉하는 것을 본 적 있다”고 증언했다. 서울지역 한 병원 간호사 B씨는 “최근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서 병원 문화가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인력충원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안 되다 보니 업무 외 일까지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태움문화 원인을 지적했다.

노조는 올해 ‘환자안전병원·노동존중 일터 만들기 4아웃 운동’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4아웃은 태움·공짜노동·속임인증·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나순자 위원장은 “노조가 병원의 근본적·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터 혁명을 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