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중견조선사 처리방안을 결정했다. 부실예방과 사전 경쟁력 강화, 시장 중심, 산업과 금융 측면의 균형 있는 고려는 정부가 밝힌 구조조정 3원칙이다.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이 3원칙을 적용한 첫 사례라고 했다. 성동조선은 법정관리, STX조선은 고강도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 자력생존이 결정됐다.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을 찾아 “조선업 재도약을 위한 혁신성장 방안을 마련하겠다”던 약속과는 차이가 크다. 산업적 고려 없이 금융 측면만 봤다는 비판이 쇄도한다.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지금도 일할 사람 모자란데, 500명 줄이라니
고민철 금속노조 STX조선해양지회장

고민철 금속노조 STX조선해양지회장

3월8일 정부는 중형조선소에 대한 정책을 발표했다. STX조선은 인력 감축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담은 노사확약서를 제출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STX조선은 채권단 관리하에서 네 번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으며 정규직 노동자가 3천600명에서 1천300여명으로 줄었다. 경비 절감을 위해 유·무급 휴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금까지도 고통분담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정규직 500명을 추가로 줄이고, 다른 자구안을 담은 노사 확약서를 요구하고 있다. 지회는 최근 1년 동안 여러 형태의 면담과 토론회를 통해 STX조선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정상화를 요구했다. 더 이상 금융논리가 아닌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산업적인 측면에서 중형조선소를 정상화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노동자들 의견은 무시된 채 결국 금융논리로 정부의 중형조선소 정책이 결정됐다. 수년 동안 자구책을 마련하고, 수년 동안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했는데 또다시 노동자들을 나가라고 한다. 지금도 일할 사람이 모자란데 인적 구조조정을 진행하라면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으로 대체해서 배를 건조하란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정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던 정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맞나. STX조선은 국민의 피 같은 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고 수주 영업을 통한 정상화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노사 확약서는 단호히 거부한다. 하지만 정부가 STX조선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사 간 의견을 조율해서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박근혜도 망설인 개악 단행한 정부
강기성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장

강기성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장

문재인 정부의 중견조선소 구조조정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조차도 산업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함부로 감행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전면에 내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전면 배치되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박근혜 정부 때부터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정부에 세계 1위의 조선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자고 요구해 왔다. 또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부터 조선산업 발전에 대한 정책협약을 맺고 지난 1년 동안 기다리며 대화를 요구해 왔다.

문재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촛불혁명의 요구였던 적폐청산도 아니며 수십년 동안 우리 경제를 지배해 온 금피아·은피아·산피아 척결도 아니며 재실사 취지였던 산업과 지역경제 측면의 고려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 시절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려는 시도보다도 더한 결정이다. 금융적인 측면만 강조된 결정일 뿐이다.

적어도 조선산업이 지역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 정도는 충분히 파악했어야 한다. 이번 결정으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많이 일자리를 창출할 길이 사라지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조선산업이 쇠퇴하면서 철강산업이 동반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소조선소 20여개가 문을 닫고 이제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중형조선만이 남았다. 한국 조선업 경쟁력 제고와 조선업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중형조선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국내외 수많은 조선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실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정부의 조선산업 혁신성장 방안에 중형조선의 회생대책도 반드시 마련되길 촉구한다.


조선업, 적정 생태계를 위한 산업정책 필요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정부가 성동조선의 법정관리와 STX조선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결정했다. 추가적인 재정투입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내린 결정으로 이해는 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첫째, 조선업을 바라보는 산업정책과 비전이 부족하다. 조선강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형조선소와 중형조선소가 적정한 수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향후 선박수요 증가에 대한 대비와 양질의 기능인 양성, 조선 R&D 향상 등에 필요한 기본요소다. 이는 산업 내에서 생태계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중형조선소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컨설팅 업체에 의존한 인력 구조조정은 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노사 갈등을 포함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정책임이 이미 여러 번 확인됐는데도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STX조선에 처방을 내린 부분이다. 40% 인력감축이라는 단순논리보다, 노사 자율적 생산원가 절감과 일터혁신, 경쟁력향상으로 생산성을 증대하는 방안이 더 필요하다.


중소조선소 공중분해가 아닌 투자가 답
정태교 금속노련 조직부장

정태교 금속노련 조직부장

정부는 대형조선소 살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중소조선소의 어려움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소조선소와 그곳의 노동자들은 이미 2008년 리먼사태 직후 법정관리·매각·파산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었고, 업체 상당수가 사라졌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중소조선소와 노동자들은 2018년 현재 또 다시 풍전등화에 놓였다.

모든 뿌리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숙련공, 즉 핵심 인력 보유에 있다. 대한민국 중소조선업체가 축적한 기술력과 노하우는 아직 확고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중심축에 숙련된 기술자들이 있다.

정부와 국책은행은 벤처기업 등 4차 산업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중소조선소와 같이 노동집약적이지만 높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요하고, 숙련된 기술자들이 축적돼 있는 산업에 대한 보호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조선업 호황기를 누린 일본은 조선 시장이 장기침체에 빠지자 1976년과 87년 두 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설계·연구 인력을 퇴출시켰고 그 결과 숙련된 기술인력이 모두 사라졌다. 일본의 조선업이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중소조선소를 구조조정해서 공중분해할 것이 아니라 중소조선소들이 이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대상에 중소조선소를 포함시키고 정부 관공선 등을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친환경·고효율 선박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중소조선소에 이전함으로써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불황 탓하지 말고 키코(KIKO) 사태부터 재수사하라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

현재 조선업계 위기의 원인을 불황 탓으로 돌리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분석이다. 성동조선해양의 경우 2009년 키코(KIKO) 피해로 1조5천억원 손실이 발생하면서 치명적인 재무구조 악화를 피할 수 없었다. 성동조선해양은 2007년 매출 5천699억원, 영업이익 254억원, 2008년 매출 1조9억원, 영업이익 1천662억원을 기록했다. 해마다 성장세였다. 그런데 2009년 우리은행 등 7개 시중은행과 맺은 키코계약 이후 8천억원의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고, 급기야 부채는 1조5천억원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더욱 고약한 것은 당시 은행들은 성동조선해양 같은 중소조선소에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RG)를 발급하면서 ‘끼워 팔기 식’으로 키코 계약을 한 것이다. 그 후 은행들은 자신들과의 계약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성동조선해양을 외면했고,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렀다.

특정기업이 망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실 원인은 대주주의 무능과 부패 등 내부에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 그렇다. 두 번째는 성동조선해양처럼 외부에서 강력한 금융·투기자본 공격에 당하는 경우다. 거기에 더해 정부 정책(관료) 실패가 있다.

실제로 정부의 관련 정책 당담자 중 금융전문가는 있지만 산업전문가는 없다. 스스로가 은행 직원이나 사모펀드 투자자 같은 사고방식으로 기업회생 여부를 결정한다. 노동자들이 저항하더라도 회사를 청산하고 구조조정해서 돈만 회수하면 된다는 식이다. 산업발전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성동조선해양을 포함한 ‘키코(KIKO) 사기사건’을 정부가 전면 재수사(조사)하는 것이다. 그런 후 피해기업에게 그에 맞는 지원을 해야 한다. 가해자인 은행에도 상응하는 처벌과 배상을 명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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