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우리 사회가 뜨겁다. 문화·예술·정치계 등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성폭력 피해사례가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15일 노동계·학계 관계자들은 “민주노총 인터넷 연관 검색어로 ‘성폭력’이 나온다”며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미투(#MeToo) 운동의 확산, 성평등 노동 현장을 위해’를 주제로 연 노동포럼은 노동계의 성폭력 대응책과 앞으로의 과제를 점검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포럼은 서울 서대문구 골든브릿지빌딩 교육장에서 열렸다.

민주노총 “조직 내 성폭력 공동체 해결 우선으로”

이날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최근 4년간 민주노총 성폭력 관련 진상조사위원회와 규율위원회에 신고된 사례를 발표했다. 김 국장에 따르면 성추행은 주로 같은 노조 간부나 낮은 직급의 사무처 활동가, 연대단체 활동가에게 발생했다. 성폭력(폭언) 사례로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남성의 폭언, 여성에 대한 차별 발언이 신고됐으며, 여성이 전담하는 내근직 등에 대한 무시가 성차별 사례로 발표됐다. 가해자 동정론 유포, 피해자와 협의되지 않은 후속조치 등 2차 가해·피해도 다수 보고됐다.

김 국장은 “가부장적 남성이 대부분 구성원으로 차지하고 있는 민주노총도 미투 운동 정국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우리가 그동안 놓친 것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체 내 해결’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공동체 내 해결을 우선해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속한 분리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김 국장은 “공동체 내에서 해결해야 조직도 변화한다”며 “가해자를 끝까지 진상조사하고 해고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성폭력 신고접수가 늘고 있는데, 이는 적신호가 아니라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내부가 조금 더 안전하다고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여성노동자 많은 병원, 피해자가 떠나”

여성노동자가 다수인 보건의료노조의 성폭력 대응 사례도 발표됐다. 윤은정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2017년 노조가 실시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설문 응답자 2만8천663명 중 2천288명(8%)이 성희롱·성폭력을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며 “하지만 피해자들은 병원 내 수직적 권력구조 속에서 가해자 처벌을 확인하기 전에 스스로 병원을 떠나는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윤 국장은 “노조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2015년부터 △성평등 전문가 양성 △병원 맞춤형 성평등교육 실시 △성평등 대응 매뉴얼 제작 △전 지부 성평등 전문 명예고용감독관 선임 △조직문화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막을 방안으로 명예평등감독관 제도를 실효성 있게 바꾸는 방안이 제시됐다. 명예평등감독관은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피해노동자와 상담을 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면 사용자에게 제도개선을 건의하고 감독기관에 신고하게 돼 있다.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직장내 성희롱 구제를 위한 명예평등감독관 제도는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 성평등담당관 제도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황 연구위원에 따르면 독일 성평등담당관은 여성만 입후보할 수 있고 투표권은 직장내 근무하는 여성들만 가진다. 4년 임기로 선출되며 임금 삭감 없이 성평등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는 “현재 성폭력 피해사실 폭로라는 형태로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피해자들이 그만큼 법·제도적 절차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실효성 있는 법·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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