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3월이다. 꽃샘추위로 외투 무게가 줄지 않아 봄을 만끽하긴 이르지만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7년 전 태어난 처조카가 얼마 전 초등학생이 됐다. 아이 부모인 처제 부부는 딸아이 입학을 앞둔 지난해 말,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감행했다. 아파트단지 산책로와 연결된 공원을 지나 아치형 육교만 건너면 학교 정문에 닿는 곳. 베란다 창문으로 아이의 등하교 상황을 지켜볼 수 있어 안심할 수 있다는 게 이사 이유였다. 그 때문에 은행에서 적지 않은 대출을 받았지만,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부모 마음은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하도록 했다.

만약 당신에게 당장 맡아 돌봐야 할 초등학생 아이가 있고 아이가 등하교하는 길목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고민해도 뾰족한 수가 없을 수도 있다. 당신은 아이에게 등·하굣길에 주변을 살피고, 각별히 주의하라고 철저히 당부할 것이다. 여건이 허락하면 아이와 함께 등교하며 안심할지 모른다. 각자가 놓인 위치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아이 안전을 위해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좌절할 수 있다.

이런 당신이 쉽고, 간단하게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는 ‘안전신문고 앱’이 바로 그것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앱을 설치해 손쉽게 신고할 수 있다. 약간의 수고로움은 필수다.

지난달 행정안전부 안전개선과에서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실제 서울지역 한 초등학교 학부모가 학교 주변에 새로 짓는 건물로 인해 새 학기에 아이가 등굣길에 다칠 것을 염려해 ‘안전신문고 앱’으로 신고했다. 이를 접수한 해당 지자체는 즉시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공사업체와 논의해 학생들 등교시간에는 작업을 일시적으로 중지하고 안전펜스를 추가로 설치하는 한편 안전원을 배치하도록 조치했다.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한 학부모의 안전신고, 이를 접수한 지자체와 공사업체의 대처로 아이들은 등굣길이 안전해졌다. 무엇보다 등교시간에 공사를 중지해 유해위험요인을 근본적으로 차단한 대처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런 상황이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상식으로 일터에서도 통용된다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일터 바깥에서 통용되는 상식은 일터에선 좀체 들어설 틈이 없다. 대개 먹고살기 위해 당장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쌓여 경력이 되고, 건강과 맞바꾸며 버텨 낸 짬밥이 쌓여 비로소 신입 티를 벗게 됐다고 인정하는 현실에서 고용이라는 밥줄은 노동자에게 목숨줄을 내놓고 일하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안전부 ‘안전신문고 앱’과 마찬가지로, 일터에서 마주하는 위험에 고용노동부의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1588-3088 위험상황신고전화’가 있다. 365일 24시간 가동되며 전국 지방노동관서로 연결되는 위험상황신고전화는 일터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다. 그러나 최근 위험상황 신고전화가 무용지물이 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를 이용한 노동자들에 의해 문제가 드러났다.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 신고를 접수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내리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설치목적을 상실한 지금의 위험상황신고전화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손봐야 한다. 이에 앞서 위험을 느낀 노동자가 즉각적인 작업중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위험상황신고전화가 필요 없는 상황이 되도록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 “산업재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 선언이 지켜지려면 현장 전문가인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장 위험을 통제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