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오늘도 어제처럼 지나간다. 이 세상의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노 없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그러니 뭔가 달라졌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당신이 나는 낯설다. 지난주 청주지역 한 대공장노조와 상담이 있었다. 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통상임금 소송사건 등에 관해서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주 52시간 근로기준법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묻고, 최저임금위원회 등의 논의를 거쳐 상여금 산입에 관한 최저임금법 개정 추진에 관해서 물었다. 노조가 주도해서 조합원들이 집단적으로 소장을 제출해서 1심 지방법원에서 주 40시간을 초과한 휴일근로에 관해 중복할증 청구를 인정받았었다. 이에 대해 사측의 항소로 2심 고등법원에서 재판 진행 중에 관련 대법원 판결 후로 변론이 추정된 상태였고,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의 공개변론이 있었으니, 이제 그 대법원 판결을 기다렸다가 법원 판결을 받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중복할증이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법률이 개정됐으니 이 노조는 걱정이 돼 내게 문의한 것이다. 노조로서는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 오늘 이 나라에서 노조간부라면 조합원들의 노동자권리가 인정되지 않게 될까, 1심 판결이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조합원·노동자를 위해서 활동하는 노동조합·노조간부라면 당연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사업장에서는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해서 지급해 왔던 터라, 최근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려고 추진하는 데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괜히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상여금의 기준을 바꿔서 조합원들의 임금권리 향상을 저해하게 돼 버렸다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어도 자신들에게는 좋은 것이 없다고, 나쁘게만 노동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중소 영세사업장, 비정규 노동자들에겐 좋은 것이라서 나쁜 것이라고 뭐라 하지도 못한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정책을 감히 비판하지는 못하고 이렇게 내게 노조간부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말했다.

2. 촛불집회로 지난해 겨울을 보내면서 이 나라에서 노동은 박근혜 심판으로 달려 나갔다. 광화문광장 등 이 나라 주요도시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하나로 달려 나갔다. 촛불시민혁명이라고 했던가. 그것은 지난해 5월 촛불대선으로 이어졌고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촛불의 승리로 우리는 환호했다. 촛불집회에서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은 노동의 구호를 내려놓지 않았다. 적폐 청산 목록에 노동적폐들을 포함해서 외쳤다. 촛불혁명 계승자라고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대선에서 노동적폐 청산을 공약했다.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문재인 후보와 그의 정당 더불어민주당과 함께했다. 촛불집회가 진행되던 내내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그들과 함께 외치기 어려운 노동의 구호를 내세우는 데 매우 조심했다. 촛불집회의 광장과 거리에서 노동운동이 외쳤던 노동의 구호는 문재인 지지자, 더불어민주당 당원도 함께 외칠 만한 것만 외쳤다. 보다 많은 시민이 참여해야 하니까, 몇 십만도 부족하고 몇 백만이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하니까. 그렇게 촛불집회를 조직하느라 주요 참가단체로서 노동운동은 조심하고 조심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고, 적폐 청산 구호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오늘도 이 나라 노동운동은 조심하고 있는가. 습성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인데, 그 평가는 오직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말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과 그 정책 추진에 노동운동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로 평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추진에 성명과 논평 등으로 비판의 말은 있었어도 비판의 행동, 노동의 투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매우 조심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3. 휴일근로의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결과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 노동자는 단순히 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결과에 대해서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 개정 법률이 시행되면 앞으로 노동자의 휴일근로에 대해 중복할증 청구는 인정될 수가 없다. 법원은 노동자 청구를 기각할 것이다. 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로라며 휴일근로가 연장근로라고 휴일수당 외에 연장근로수당을 청구하는 노동자를 법에 무지한 바보라고 사용자는 비웃을 것이다. 그러니 법률 개정으로 지금 사용자 자본은 웃고 있을 것이다. 이 법률이 시행되면 더는 법원에서 판결이 어떻게 나올까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으니 흡족해 하고 있을 게다. 이렇게 앞으로 중복할증을 청구할 수조차 없게 된 근로기준법 개정에 관해서 오늘 걱정은 노동의 몫이다. 이런 법 개정을 두고서 주 52시간 근로시간단축은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 노동의 편이라며 말하는 자도, 심지어 노동자·노조조차도 중복할증은 아쉽지만 주 52시간 근로시간으로 개정됐으니, 여기에 관공서 공휴일도 휴일로 인정될 수 있게 됐으니 전체적으로는 잘된 법률 개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였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이런 개정안이 통과됐을 때만 해도 국회 앞 집회 등으로 반발하던 민주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은 막상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투쟁으로 행동하는 걸 멈췄다. 그래서 오늘 더는 이번 법 개정을 두고서 노동운동의 조직적 반대는 없다. 나는 기존 근로기준법에서 법정근로시간은 1주 40시간이고, 연장근로까지 포함해서도 여기에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논문과 칼럼, 소장과 준비서면에 수도 없이 쓰고 말했다. 이것은 명백하다. 1주가 휴일을 제외하고서 5일·6일이라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은 엉터리라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도대체 휴일근로는 1주간의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해 낼 자는 노동부 관료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분명히 했다고, 즉 1주가 휴일까지 포함해서 7일이라고 근로기준법에 명시했다고 잘된 것이라고 하는 말에 나는 절망한다. 이 1주가 휴일까지 포함해서 7일이라는 개정안은 박근혜 정권의 노동시장 구조개혁법안에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그걸 그대로 이번에 통과시킨 것에 불과하다. 도대체 잘한 일이라고 말할 것이 없다. 헌법은 “근로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면서(32조1항), 국가 대한민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32조3항). 노사 교섭 내지 협의, 또는 노사정 합의 내지 협의를 통해서 서로 양보하고 절충해 노동자권리를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노동자권리를 법률로 정하도록 헌법은 국가 대한민국에 명령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노사정 합의를 내세우면서 노동법 개정을 평가해 대고 있다. 이번 법률 개정에 관해서 이 나라 노동계의 논평을 살펴보면, 주된 아쉬움은 충분히 노사정 합의 없이 추진됐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노동계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서 했더라면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노동법 개정에 대한 이 나라 노동운동의 심리일 게다. 이는 노동자권리를 위하는 노동입법을 노사정 합의 내지 협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는 짓은 그것이 아무리 합의 내지 협의라고 내세워도 협잡일 뿐이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것이 아닌 한 노사정이든 노정이든 그 합의나 협의는 아무리 충분히 한 것이라고 해도 정당할 수가 없다. 그것을 비판하는 노동의 행동은 노동의 역사에서 언제나 정당하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권리를 위해 대한민국헌법이 부여한 국가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노사 간에 균형이니 뭐니 하며 양보와 절충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헌법이 부여한 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을 개정해 나가야 한다. 노동법 개정에 관해 노사니 노사정이니 뭐니 하면서 합의 운운하는 것은 결국 노동자권리 내지 노동기본권의 일부를 양보하고 다른 것을 확보하는 절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 이 나라에서는 다시 최저임금에 상여금을 산입하기 위한 합의 내지 협의가 추진되고 있다. 최저임금법령은 상여금을 제하고서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그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해마다 고시해 왔던 것이다. 지난 촛불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만원의 최저임금을 공약했다. 당시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해서 그것을 달성하겠다고는 공약하지 않았다.

4. 어제와 다름 없이 지나가는 오늘의 시간이 안타깝다. 어제는 비판의 행동이라도 있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리로 권력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면서 행동으로 투쟁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촛불혁명 과제, 적폐 청산을 위해서는 함께해야 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어제처럼 노동자권리로 권력의 행위를 바라보는 것을 놓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표적인 노동입법인 주 52시간 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면서 휴일 중복할증이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못을 박았다. 노동자권리를 위해서라면 휴일 중복할증을 인정하는 입법을 해야 했다. 그리고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려는 시도가 있다.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에 대해서는 산입해야 한다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진하고 있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됐으니 최저임금에도 산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둥 합리적인 양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에도 감히 포함돼 있지 않았던 것을 노동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노동법을 만드는 일이 국가 권력이 할 일이다.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는 것이 헌법이 부여한 국가의 일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는 권력의 일에 대한 분노는 결코 한시도 멈추거나 숨겨서는 안 될 노동운동의 심리여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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