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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게 살자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손방아는 봉건영주의 사회를 낳고 증기방아는 자본가의 사회를 낳는다.” 카를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한 말이다. 고도로 기계화·정보화된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의 사회’를 낳아야 한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 방직기계 한 대가 1분 동안 작업한 양이 숙련 여공의 100시간 작업량과 같다고 하면서 그렇다면 우리가 왜 게으르면 안 되는지를 반문했다. 맞는 말이다.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정말 간단히 말하자면 배분이 불공정해서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으름’을 악으로 보는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남들 다 야근하는데 정시에 퇴근하거나, 연차휴가를 필요할 때 꼬박꼬박 쓰는 사람을 백안시하는 문화가 있다면 이는 노동자들이 만든 것은 아니다. 산업국가와 자본가,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법률 등의 상부구조가 이윤을 넘치게 창출하려고 국민에게 이를 주입한다. 기업이 가져가는 몫을 제외하고 나면 노동자들이 나눠 먹을 나머지가 너무 적거나 일자리 자체가 점점 줄어드는 구조, 즉 노동자끼리 무한경쟁에 빠지는 하부구조 모순 자체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일은 기계가 다 하고 컴퓨터의 정보처리능력은 인간의 수억 배에 달한다는데 우리는 왜 그만큼 게으를 수 없는가. 지구 전체로 보면 산업혁명 이전 대비 현재의 생산성은 아마도 수억 배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와 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의 이익이 지구인에게 고루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소유한 사람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게으를 수 없다.

이와 같은 현대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일하기만 한다면 거의 일하지 않아도 된다. 1980년 프랑스 녹색당의 앙드레 고르가 선언한 내용이다. 이 기조를 98년 리오넬 조스팽의 사회당 정부가 실행했다. 임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 35시간 노동을 법제화한 것이다. 기업의 반발이 있었으나 내수경제가 살아난 효과는 그 기업들마저 이내 만족시켰다. 고용은 50만명 증가했다. 독일은 1966년 주 40시간 도입 이후 순차적으로 줄여서 95년 주 35시간이 됐다. 스칸디나비아반도 북유럽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6년 기준 국내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천69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천764시간)보다 305시간 많았다. 2015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통계상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취업자 1인당 부가가치)은 OECD 30개국 가운데 23위로 절대 수준은 미국의 57.3%, 일본의 77.1%에 해당한다. 이처럼 장시간 노동은 업무 집중도를 저하하고, 교육·훈련 기회를 축소할 뿐만 아니라 피로 누적과 건강 악화에 따른 재생산 비용 증가를 초래한다.

위 통계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은 고용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실업증가와 더불어 노동시간이 급격히 상승한 외환위기 이후 고용탄력성이 2001년 0.53에서 매년 하락해 비정규직 비율이 최고조에 달한 2007년 0.24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업주의 노동시간에 대한 인식은 '질'이 아닌 '물량'에 머물러 있다. 재계는 사람을 적게 쓰고 초과근로를 많이 시킬수록 유능한 리더로 평가한다. 노동자들의 여가는 양도 줄고 질도 나빠진다. 스포츠나 레저·독서 같은 적극적 여가가 아니라 TV시청·컴퓨터게임·음주 등 소극적이거나 소모적인 여가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영국 싱크탱크인 레가툼에서 발표하는 세계번영지수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50개국 중 36위를 차지했다. 주된 근거는 여가시간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고용 없는 성장, 행복 없는 성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노동시간단축은 제도적 개선이 우선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에 토·일요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일’로 명문화하면서 1주 법정 최장노동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했다. 주당 노동시간 제한 규정에서 제외하는 ‘특례업종’은 26종에서 5종으로 줄였다. 이는 잘한 일이다. 그러나 연장·휴일근로수당 중복가산 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후퇴하고 말았다. 즉 휴일에 일하는 경우 휴일수당과 연장수당을 중복가산해서 200%로 지급하는 당연한 법리와 법원 판단에도 기업의 근거 없는 주장을 그대로 따라 150%만 지급하기로 했다. 대단히 실망스러운 결과다.

노동시간을 단축했으니 중복가산은 양보하라는 기계적 형평의 태도로 정부가 법률을 위배하는 해석을 내릴 수는 없다. 연장·휴일근로수당 중복가산은 조속히 재개정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정부의 노동시간단축은 반갑지만 ‘지연된 정의(正義)’일 뿐이다. 노동시간단축은 외국 선진국에 비할 때 이미 진도가 수십 년 늦었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고용을 창출하고 그 결과 내수를 진작해 국가경제와 개인행복이 함께 발전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응원한다. 우리 노동자들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현장에서 소리 높여 주장하자.

류하경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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