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노조를 자문하다 보면 네 가지 유형의 경영진을 만나게 된다. 첫째, 경영에 유능하고 노조에도 호의적인 경영진. 둘째, 유능하지만 노조에는 적대적인 경영진. 셋째, 경영과 노조 모두에 무관심한 경영진. 넷째, 무능하면서 노조에는 적대적인 경영진.

노조에 가장 유리한 유형은 어떤 것일까. 당연히 첫 번째다. 두 번째 유형도 나쁘지는 않다. 회사 지불능력이 되니 노조의 임금 요구에 거침이 없고, 노조가 해이해질 만하면 사용자가 한번씩 탄압해 주니, 간부들이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노조에 가장 불리한 유형은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네 번째다. 회사 경영은 엉망인데, 입만 열면 “노조 탓”하는 경영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사례다. 한편 세 번째 유형도 만만치 않게 노조에 불리하다. 대주주 친인척들이나 채권단이 선임한 경영진 또는 낙하산 인사가 경영권을 맡았을 때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보통 이들은 제 잇속만 챙기고 회사를 나간다.

최근 경영위기로 전국적 이슈가 된 한국지엠과 금호타이어는 어떨까. 한국지엠 현 경영진은 세 번째 유형이다. 본사 지침을 수행할 뿐 한국지엠 수장으로서 본사를 상대로 투자를 이끌어 낼 의지도, 적극적인 미래 전망으로 노조를 설득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금호타이어 경영진은 세 번째와 네 번째가 혼합된 유형이다. 금호타이어를 좌지우지하는 한국산업은행 채권단은 금호타이어에서 발을 빼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박삼구 회장 밑에서 커 온 현재 경영진들은 입만 열면 “노조 탓”하며 지난 십여년간 엉망이 된 회사 경영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한국지엠과 금호타이어 노동자는 침몰하는 배에서 선장의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고 있는 느낌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뿐이다. 무능한 선장을 대신해 배의 키를 잡고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배를 복원시켜 보든지, 아니면 그나마 피해가 덜할 때 탈출하든지.

여러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두 기업의 부실은 경영진 탓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는 질문이다. 미세먼지와 비슷하다. 아무리 중국에 욕해 봤자다. 한반도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중국발 미세먼지만큼 국내 발생 미세먼지를 줄이는 것밖에 당장은 해결책이 없다.

두 기업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지엠의 글로벌 전략을 한국이 바꿀 수 없는 이상, 금호타이어를 제대로 운영하겠다고 나서는 국내 자본이 없는 이상 결국 노조가 기업 운명의 키를 잡는 수밖에 답이 없다.

두 노조는 자본유출 구조를 개선하고, 막무가내 매각을 저지하며, 지속가능한 생산과 투자가 이어질 수 있도록 경영 전면에 스스로 나서야 한다. 한국지엠의 대주주 지엠은 정부지원금으로 공장을 돌리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태도다. 금호타이어 채권단 산업은행은 당장만 면해 보겠다고 먹튀가 분명한 중국기업에 금호타이어를 넘기려 한다. 두 기업에는 장기적 발전이 필요한 투자와 전략적 판단이 절실한데 현 경영진과 정부는 당장만 면해 보자는 식으로 경영 판단을 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노조 말고는 장기적 발전을 고민하는 세력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노조운동은 경영위기 상황에서 ‘희생자’ 정체성으로 “책임전가 반대”와 “책임자 처벌”을 일반적으로 요구해 왔다. 두 기업의 노조 역시 지금까지는 이런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제조업 상황에서는 무능한 경영진을 처벌하고 유능한 경영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대마불사 신화도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대안이 되는 길 말고는 답을 찾기가 어려운 조건이다. 책임자가 해결하라고 해서 해결될 일이 없는 상황이다.

심각한 위기에서 노조가 임금을 양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그만큼 경영에 대한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경영권을 공유해 투명한 경영과 지속가능한 노동친화적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방법은 노조의 이사회 참여일 수도 있고,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협약을 체결하는 것일 수도 있다(현행법으로는 전자만 가능하다). 되돌릴 수 없는 경영위기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노조 교섭력이 더 강해지니,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요구들을 과감하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심각한 경영위기에서 노조의 경영통제와 참여는 더 많은 노동자가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정규직·사내하청·부품사 등 기업 내외 고용관계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고용을 유지하려면 아주 현실적인 일자리 나누기 계획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보통 심각한 경영위기 상황에서는 ”총고용 보장” 같은 명분은 현실의 엄청난 고용불안 속에 그다지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명분만 앞세운 채 현장에서는 힘 있는 집단 중심으로 고용을 먼저 챙기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경영위기 상황의 구조조정은 엄청난 ‘노노갈등’의 과정이기도 하다. 만약 노조가 노노갈등을 막고 총고용 보장이라는 명분을 실질적으로 현실화하려면, 경영 전반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물론 이런 방법보다 근본적 대책은 기업 존폐와 관계없이 노동자 삶이 보장되는 사회복지와 전국적 산업적 초기업 노조를 만드는 것이다. “해고가 살인”인 세상에서 기업 내 노조 역할은 제약이 크다. 하지만 한국지엠이나 금호타이어 노조는 당장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살아야 할 상황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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