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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위험하다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긴 겨울의 끝자락 새벽, 스물일곱 새내기 간호사가 몸을 던져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중환자실에서 꺼질 듯 말 듯 이어지는 환자들의 생명조차 지키고자 고심하던 간호사는 정작 스물일곱 반짝반짝 빛나고 창창해야 할 자신의 생은 지켜 내지 못했다. 촛불을 들고 “일생을 의롭게 살며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도 하지 않겠으며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선서로 시작했을 그 일이 자신의 안녕과 생명에 해롭고 고돼 생의 촛불을 꺼지게 만든 것이다.

아픈 사람들에게 병원은 몸과 마음의 질병을 치유받는 공간이다. 당연히 가장 안전하고 쾌적해야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 서면 문제는 달라진다. 병원은 온갖 종류의 병원체와 질병이 한데 모인 공간이며 그것에 대처하는 다양한 약품과 도구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과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환자는 진료와 보살핌의 대상이자 위험 그 자체이기도 하다. 환자 검사와 진료와 간병을 피할 수 없는 의료인과 병원 종사자들은 항상 직업상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환자들은 항상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며 보호자들은 보살핌의 크기가 조금만 작아 보여도 날 선 반응을 보인다. 이것을 일선에서 맡아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대개 간호사에게 맡겨진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권위로 존중받지만, 간호사들은 나이팅게일의 천사 이미지로 비교당한다. 간호사 1인당 환자 5.4명인 미국, 7명인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25~40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고, 숨이 멎어 가는 환자 1명을 돌보기에도 벅찬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두세 명을 담당해야 한다고도 한다.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가 조사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보면 40.9%가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고, 인권침해를 겪은 적 있다는 응답은 70%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5.4년, 1년 미만 경력의 간호사 이직률은 33.9%라고 보도된다.

의사라고 별다른 것은 아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2014년 한국 전공의들의 노동시간은 1주일 평균 93시간이다. 연차별로 보면 인턴은 116시간, 레지던트 1년차는 103시간이었다(일주일은 163시간이다!). 인턴의 13.1%가 직장에서 신체적 폭력을, 61.5%가 언어폭력을 경험했고 여성 인턴의 27.5%는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여성 레지턴트 중 12.6%, 남성 레지던트 중 9.3%가 지난 1년간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환자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병원이기에 의료인 교육과정은 엄격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환자 생명을 다루는 의료산업, 승객 생명과 안전을 좌지우지하는 운수업에서 필수공익사업장 혹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특례업종이라는 미명 아래 오히려 예외적인 장시간 노동을 시키게 되는 역설은 어떠한가.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건강과 안전은 개인의 헌신과 소진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 존중의 가치가 보편화되고 사회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로 책임만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의식은 희미해진다. 모두 같은 경험을 거쳐 왔음에도 간호사의 임신과 출산은 축복 대신 눈총을 받게 되고 병원 구석에서 지쳐 잠든 아래 연차 전공의의 소진 역시 통과의례가 된다. 이해와 공감에 앞서는 것은 질책과 긴장이다. 청년실업과 불황의 시대에 안정적인 직장과 상대적인 고수익을 보장받기에 응당 감내해야 할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병원이 위험하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이 위태로우면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 역시 위협받는다.

새내기 간호사를 추모하는 ‘간호사연대’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는 너였다. 나는 너다. 나를 잃지 않겠다. 나를 지켜봐 줘. 더는 울지 않겠다. 나는 너다.” 태우는 사람 타는 사람, 상처받는 사람 상처 주는 사람도 모두 나였고 너였다. 자신에게 놓인 압도적인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조직과 체계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나‘만’을 지켰다는 이유로 태움과 직장 괴롭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연대는 상처받고 타서 소진되는 사람들에게서 시작해 어쩔 수 없이 태우고 상처 주게 된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간호사연대가 “직장에서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침해해 노동자의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구조적으로 몰아내는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류현철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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