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 크레인지회장

지난 2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 추락사고로 건설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건설노조는 5일 국회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앞에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건설노동자를 추모하고 건설현장 안전을 기원하는 안전기원제를 한다.

이번 사고를 보면 필자가 노조에 막 가입했던 때 발생한 일이 떠오른다. 2011년 1월이었다. 크레인 조종사였던 동료가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상황에서 작업 교체를 요청했다. 하지만 크레인이 작업을 멈추면 모든 공정이 중단된다는 이유로 요청은 묵살됐다. 끙끙 앓으며 일하던 동료는 피를 토하고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 갔다. 병원에선 폐가 다 녹아 없어졌다고 했다. 입원한 지 한 달이 안 돼 사망했다. 동료는 산재 처리를 받지도 못했다. 이후 건설현장의 잘못된 적폐와 안전관리 실태를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이 일어난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지만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비전문가의 형식적인 주입식 교육만 있을 뿐이다. 건설기계 구조나 위험성 관리는 국토교통부, 건설현장 안전과 사고는 고용노동부가 각각 관리하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건설현장에서 안전재난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복잡한 건설현장 안전관리 당사자는 발주처·원도급자인데 관리 자체가 허술하다. 공기를 반드시 맞춰야 하는 건설사는 공정에 걸림돌이 되는 안전은 무시한다. 건설현장에는 건설 자재와 전기·가스 등 각종 위험물이 도처에 있다. 작업순서가 맞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은 발주처·원도급자가 해야 한다.

크레인 조종사들은 자체 판단으로 중량물을 인양하지 못한다. 건설사가 작성하는 중량물 취급 작업계획서에 따라 신호를 받은 뒤 크레인을 조종한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지키는 곳은 거의 없다.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크레인 조종사에게 전가된다.

둘째, 발주처·원도급 건설사가 산재를 책임지지 않는다. 불법 재하도급이 성행하고, 원도급사 안전관리 담당이나 현장소장이 없는 주말 또는 법정공휴일에도 작업은 계속되지만 이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는 없다.

셋째, 건설현장 산재사고는 노동자 과실로 결론 나기 일쑤다. 건설노동자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리한 쪽은 건설사다. 건설노동자에게 안전은 일하기 전 하는 안전체조에서 외치는 구호밖에 없다. 설사 노동자들이 현장 위험을 인지하더라도 현장소장이나 안전관리자에게 수용되기가 쉽지 않다. 건설현장에도 외부 안전전문가를 감리자처럼 고용하고 익명 건의함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위험 상황을 제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최근 연이은 타워크레인 사고를 두고 정부에서 나온 ‘조종석 CCTV 설치’ 대책에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CCTV라면 크레인 조종사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달아야 한다. 조종사를 비추는 게 안전사고 예방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 의아할 뿐이다.

넷째, 건설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은 무용지물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38조에 따라 건설사는 중량물 취급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66조에는 관리·감독에 대한 규정도 있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는 규정은 거의 없다. 안전을 외치면서 안전을 위한 법은 지키지 않는다.

건설노조는 산재를 막기 위해 △건설현장 중대재해 원청·발주처 책임 및 처벌 강화 △노동중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구상권 폐지 △타워크레인 조종석 CCTV 설치 철회 및 소형타워크레인 안전대책 마련 △전기원 노동자 산재사고에 대한 한국전력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건설현장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언제 터지느냐가 관건이다. 건설현장 펜스 안에서 전복되던 크레인이 이제 도로와 주거지를 덮치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조선소사고·대형화재·해난사고 등은 건설현장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사회 전체에 독버섯처럼 퍼져 언제라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지금도 건설현장에서 운명을 달리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건설노동자들은 안전한 건설현장을 촉구하며 투쟁 조끼에 검은 리본을 달았다. 다시는 검은 리본을 달지 않도록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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