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2009년과 2010년 제주의료원에서 간호사 5명이 유산하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 자녀를 출산해 업무상재해 논란이 일었다. 제주의료원 사건을 계기로 여성노동자와 태아 보호 관련 사회적 관심이 고조됐다. 업무상질병·재해로 여성노동자가 유산·사산하거나 출산한 자녀의 건강에 손상이 있는 경우 태아에 대해서도 산재보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산재보험법 업무상재해 인정기준 넓혀야”=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주의료원 사례로 본 여성노동자 모성보호 강화를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현주 우송대 교수(간호학)가 발제를 통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임신노동자 모성보호를 위한 사후 구제방안이 부재하다”며 “업무상재해를 당한 임신노동자가 출산한 자녀의 건강이 손상됐다면 여성노동자와 자녀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업무상재해 인정기준에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상부상, 업무상질병, 출퇴근재해로 인해 사산 또는 출산 이상이 있거나 우려가 있는 경우”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모자보건법에 따른 미숙아와 선천성 이상아, 선천성 장애 또는 질병이 있는 자녀를 여성노동자가 출산한 경우 아이까지 업무상재해 보상 대상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임신노동자 업무로 인해 태아의 건강손상이 발생하면 사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이현주 교수는 “민법 손해배상은 입증책임이 피해자인 노동자에게 있어 입증에 어려움이 있고 변호사 비용 부담도 있다”며 “산재보험법에 비해 보호수준도 낮아 산재보험에서 보상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출산아 산재 대상 여부 논란=제주의료원 간호사 중 유산한 간호사 4명과 선천성 심장질환 자녀를 출산한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인력부족으로 심각한 업무과중 상태였다. 임신한 간호사들이 보호장구 없이 유해약품을 취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공단은 유산 4건은 업무상재해로 승인했지만 선천성 심장질환 자녀 출산 4건은 인정하지 않았다. 간호사 4명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임신 중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므로 업무에 따른 태아의 건강 손상은 근로자 업무상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산재는 근로자 본인에게 발생한 것을 대상으로 하며 출산아에게 발생한 것은 산재로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연간 4만명 유산하는데 임신 관련 산재신청 거의 없어=업무 중 유해요소에 노출돼 태아를 유산하면 업무상재해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임신 현황에 따르면 연평균 4만여명이 유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교대근무·야간근무·판매직여성들의 유산율이 높았다. 그렇지만 최근 5년간 임신·유산 관련 산재신청은 8건에 그쳤다. 제주의료원 사건 8건을 제외하면 전무하다.

이현주 교수는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 임신노동자 모성보호를 위한 직장내 안전과 보건정책이 미흡하다”며 “문재인 정부 저출산정책에도 직장내 임신노동자 안전 관련 대책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르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정작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임신노동자 보호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노동부, 태아 건강손상 산재보상 입법발의 추진=주평식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은 “유·사산이나 출산한 자녀의 건강손상이 있는 경우 태아에 대해서도 산재보상을 하는 등 보상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산재보험 체계와 관련된 문제라서 적용방안에 대한 연구와 함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임신 중 태아 건강손상에 관한 산재보상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반기에 입법발의를 추진한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여성·태아 유·사산하거나 출산한 자녀에게 건강 손상이 있을 때 산재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산재 인정뿐만 아니라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력충원과 교대근무 개선, 유해요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공공운수노조·한국여성노동자회와 강병원·김상희·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소하·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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