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슬쩍만 밀어도 쓰러져!”

월요일 아침이었다. 파업 중인 라인에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 보였다. 건장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건장하다. 몸엔 문신도 보인다. 이들은 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저 파업 중인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을 조롱하고 도발할 뿐이다. 그게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용역깡패였다.

협력업체 사장도 보인다. 돌아다니는 행색이 뭔가 수상하다. 상의 앞주머니에 뭔가 의심스러운 펜이 꽂혀 있다. 몰래카메라였다. 조합원들이 용역깡패의 조롱과 도발을 참지 못해 충돌이 발생하면 그걸 채증하려던 목적인 게 뻔하다.

몰카에 녹음된 내용을 보니 더욱 가관이다. 용역깡패를 사무보조직원으로 위장취업시켜 조합원들을 도발하고, 살짝만 밀어도 넘어지는 할리우드액션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그렇게 상해진단서를 끊으면 원청인 한국지엠이 이를 빌미로 출입금지가처분을 하여 조합원들을 아예 공장 내에 발붙이지 못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자해공갈단이나 다름없다. 그는 이런 기막힌 작당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위(지엠)에서 보기에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퀴퀴한 곰팡내가 나는 어느 지하 소극장에서 봤음직한 연극의 한 장면 같지만 불행하게도 2018년 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국지엠과 창원공장 협력업체 사장들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에서까지 확정된 것이 벌써 5년 전 일이다. 법원은 창원공장 모든 공정의 협력업체 비정규직들은 불법적인 파견근로라고 했다. 옛 파견법은 불법파견근로를 제공받은 사용자는 그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창원공장 협력업체 비정규직들은 모두 원청인 한국지엠 노동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지엠은 판결을 무시했다. 억울하면 민사소송을 하란다.

민사소송은 돈이 많이 든다. 시간도 많이 든다. 심지어 대놓고 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5명이 대표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2심, 3심. 대법원은 2016년 다시 한 번 이들이 한국지엠 노동자임을 확인해 줬다. 그런데도 지엠은 이들의 과거 임금차액이 합의되지 않았음을 핑계로 정규직화를 몇 달이나 미뤘다.

이렇게 두 번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미 한국지엠은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확인된 불법파견 사업장이다. 대한민국 법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할 셈이 아니라면 한국지엠은 즉시 산하 협력업체 비정규직 모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엠은 계속해서 무시했다. 역시 억울하면 각자 민사소송을 하란다. 집단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1심 판결이 나왔다. 물론 결론은 같다. 모든 공정 모든 비정규직을 고용하라는 것이 법원의 주문이다. 지엠은 계속 불복할 것이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비정규직들이 지엠을 상대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하다. 그런데 지엠이 하는 말이 참으로 가관이다.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 요구가 “법적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란다. 방화범이 방화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도 피해자들의 보상요구에 대해 “법적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법치주의 부정행위”라고 강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뻔뻔함의 극치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자는 바로 글로벌 자본 지엠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엠은 비정규직들의 파업을 이유로 해당 공정의 도급(실질은 근로자 파견)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을 해지당한 협력업체들은 늘 그렇듯 폐업을 하고, 비정규직들에겐 해고를 통보했다. 2월1일의 일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지엠의 정규직이었어야 할 비정규직들은,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친 2018년 정초부터 거리로 내몰렸다. 그래서 투쟁했다. 그러자 협력업체 사장은 '위에 뭐라도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용역깡패들에게 할리우드액션을 주문했다. 군산공장 폐쇄를 두고 한국지엠에 대한 여론이 곱지 않다.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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